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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신록예찬

렌즈로 보는 세상 2018. 4. 23. 07:00



주말 오후 햇살이 따스하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다.

우리는 사과 하나,

오이 하나, 물 한 통씩을 챙겨

가까운 곳에 있는 수리산으로 향했다.

수리산은 입구부터 연록의 가로수가 우릴 반긴다.

기분 좋다.

숨을 할딱거리며 오르는 수리산 슬기봉으로 가는 길은

다양한 녹색의 잎들이 싱그럽다.

내가 봄을 좋아하는 것은 

이 피어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신록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신록은 꿈을 꾸는 청춘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山峰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와 같아 '수리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

또 신라 진흥왕 때 (539∼575) 창건한 절이

信心을 닦는 聖地라 하여 修理寺라 하였는데

그 후 山名을 '수리산'이라 칭하였다.

는 설도 있는 수리산을 오르면서

여학교 때 국어책에서 감탄하면서 읽었던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 

구절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씻었다.







 신록예찬

                                                                 이양하 (1904-1963) : 영문학자,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自然)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驚異)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綠陰)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우리가 비록 빈한(貧寒)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期待)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一帶)를 덮은 신록(新綠)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生氣)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루 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仙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은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가하면 우리 사람이란

- 세속(世俗)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데

마음에 영일(寧日)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卑小)하고,

어떻게 저속(低俗)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調和)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 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는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라 할까,

현요(眩耀) 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礙),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心情)의 고갈(枯渴)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汚辱)과 모든 우울(憂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相剋과 갈등)과 갈등(葛藤)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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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에, 초록(草綠)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잎이 돋아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幼年)이라 한다면,

삼복염천(三伏 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는

그의 장년(壯年) 내지 노년(老年)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시대(靑春時代)-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洗禮)를 받아 청신(淸新)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을 다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체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는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 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산(林山)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淸新)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