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도담삼봉을 찾았다.
눈 내리고 희뿌연 날씨가 추억을 불러온다.
우린 국민학교 5학년 가을에
이곳 도담삼봉으로 소풍을 온 추억이 있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는 우리들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을 서성거렸다.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시골 출신이다.
하루 몇 번 버스가 다니는 곳에서
유년과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나도 물론이다.
산골 20여 호가 사는 동네,
버스를 타려고해도
20여 분을 걸어가야 만하는 곳에서 살던 나는
탈 것이라고는 가끔 동네 위
작은 하늘을 쏜살같이 지나가던 비행기와
장날이면 동네의 각종 농산물을 싣고
읍내 장터로 가는 소달구지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국민학교 5학년 가을
도담삼봉으로 소풍을 간다는
것만도 신기했는데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기차를 타고 간다는 건
너무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소풍 당일 어매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땅콩과 밤, 고구마를 삶고
고추장 살짝 들어간
멸치볶음 한 가지 넣은 김밥을 말아주었다.
속이 어떠면 무슨 상관이랴
자주 먹지도 못하는 김밥을 싸주는 것만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것들을 어디 요즈음 같은
배낭에 넣은 것도 아니고
언니가 만들어준 천 가방에 넣어 들고
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가면
벌써 고구마는 곤죽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우리는
다시 오 리길은 더 걸어 평은역으로 가서
중앙선 청량리행 완행열차를 탔다.
지금 같으면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곳을
그 때는 하루 종일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으면
아침에 탄 기차에서 점심을 먹었을까?
그렇게 처음 타보는 기차는 정말 대단했다.
역사로 굽어 들어오는
기차의 길게 울리는 기적 소리에 놀라고
웅장한 모습에 놀랐다.
또 일단 비포장 도로라 덜컹거리는 버스에 비해
달리는데도 아주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신기한 기차에서 밤도 까서 먹고
땅콩도 까먹으며
친구들과 재잘거렸지만
고구마는 끝내 꺼내지 못했다.
종이 봉투와 하나가 된
곤죽인 그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내린 도담역에는
더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늘 농사를 짓던 들판만 보던 눈에
신기하게 생긴 시멘트 공장이다.
산업화가 막 시작하던 60년 대 말
산업을 대표하던 시멘트 공장을
직접 눈으로 보던 신기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신기한 풍경을 지나
한 참을 걸어간 도담삼봉은
또 얼마나 신기하던지...
마치 사람이 만들어
강 물 위에 띄어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
그 아름다움을 우린 오래 보지도 못하고
다시 기차를 타러 왔던 것 같다.
도담삼봉은 오래 즐기지도 못하고
돌아온 그 해 가을 소풍은
늦은 밤길을 걸어
집에 도착하는 걸로 끝이 났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걸 잊어버렸지만
그 때의 어렴풋한 기억은
아직 내 마음의 도담삼봉으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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