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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오리 이원익선생 종가가 아닌 '충현박물관'ㅡ그곳에서 청렴을 배우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9. 21. 07:00

 

 

 

오래된 고가나 종가가 많은 안동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가나 종가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 서울 근처(광명)에 올라와 있을 때도 시간 나는 대로 종가를 둘러보고 싶어진다.

며칠 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오리 이원익선생의 종가를 다녀왔다.
 
왜 오리 이원익선생의 종가가 아니고 '충현박물관'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들린 '충현박물관'.

 너무나 잘 정비되어 있어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해설사의 말을 들어보니 종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고 한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안동의 많은 종가들이 고택체험을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걸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종가도 이렇게 경제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충현박물관 정문.

 

주중에는 예약을 해야 관람을 할 수 있고, 토요일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을 할 수 있다.

 충현박물관의 문이 평일에는 굳게 닫혀있는 게 안타깝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인 모양이다.

 

 

 

 

충현박물관 안내판에 안내도와 오리선생 유적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충현박물관'은 조선시대 오리 이원익(1547-1634)선생과 그의 직계 후손들의 유물과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오리 이원익 선생은 태종의 12번째 아들 익령군의 4대손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내며 많은 업적을 남겨왔다.

 '대동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세금부담을 덜어주었고,

임진왜란 당시 평안도순찰사로 평양탈환에 공을 세우고 4도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여

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돋보인다.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에 녹선 되었고, 사후에 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충현 박물관 관람 안내도.

 

'충현박물관' 일대는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

인조께서 하사하신 '관감당'과 사당인 '오리영우', '충현서원지', 종택 등 지정문화재가 있다.

 또 선생이 거문고를 타던 탄금암과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 선생의 부모님 묘소와 형님 묘소, 최근 복원된 풍욕대,

삼상대와 같은 정자와 새로 지은 유물전시관인 '충현관'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에 유물 전시관인 '충현관'이 있고 왼쪽에는 유적이 많은 야외박물관과 종택이 있다.

 

 

 

 

먼저 선생의 이야기가 배여 있는 사랑채격인 관감당 쪽으로 들어가본다.

관감당 마당에는 수령 400년이 된 측백나무가 관감당을 지키고 있다.

 

 

 

 

관감당(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이 곳 초가에 살 때 인조가 승지를 보내어 그 생활을 알아보았다.

비바람이 새는 퇴락한 집에서 곤궁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집을 하사하였다.

선생은 청백리로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뜻으로 '관감정'이라고 했다.

후에 병자호란으로 크게 훼손된 것을 후손들이 중건, '관감당'이라 편액을 달았다.

 

 

 

 

관감당에서 바라본 바깥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모란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면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걸개로 들어 올린 문과 천정의 대들보와 서까래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나는 한옥의 가장 아름다운 곳은 천장이라고 생각한다.

 

 

 

 

관감당 마당에는 선생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바위 탄금암이 있다.

선생은 지금의 동숭동에 사실 때 자주 이곳에 돌아와 이 바위에서 거문고를 탔단다.
 

 

 

관감당 뒤편에 있는 오리영우(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오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사당이다. 종택에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건물로, 터진 기둥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이원익 선생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80호).


편적으로 종가의 사당에 신주가 모셔져있는 것과 다르게 여기는 영정이 모셔져있다.

 

 

 

영우를 지나 '충현서원'이란 편액이 붙은 문을 따라 들어가 보지만 서원은 없고 빈터만 있다.

 생의 뜻을 기려 지방교육을 담당하고 제사를 지내던 서원은 대원군의 서월철패령으로 훼철되고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

선생의 시호는 '문충'이다.

 

 

 

우의정 ,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거친 선생을 기려 후손 및 문인들이 건립한 '삼상대'.

 

 

 

삼상대 뒤쪽도 떡시루와 맷돌로 가득한 야외전시장이다.

 

 

 

바람이 목욕을 한다는 비유가 아름다운 이름의 정자, 풍욕대도 새로 지은 건물이다.

 

 

 

종택 뒤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선생의 부모인 함천군(이억재) 내외묘소의 석물과 비석이 고요하다.

 충현박물관은 알뜰히 산을 오르지 않아도 우리의 묘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어 좋다.

 

 

 

야외박물관을 오르내릴 때의 길들도 아름답다.

 친구들과 가족들 아니면 연인들과 함께해도 너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함천군 내외묘소 아래쪽에 있는 선생의 형님(이원보) 내외 묘소.

 

그런데 오리선생의 묘소는 여기에 없고 박물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게으른 사람인 나는 오리선생의 묘소도 여기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충현박물관'의 후원은 어디 하나 눈 설게 하는 곳 없이 어디나 아름다운 산책로이다.

 

 

 

 

감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조각물이나 정자도 아름답다.

꽃 피는 봄날에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감나무가 지천인 이곳을 단풍드는 늦가을에 찾아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석물들이 있는 야외박물관도 아름답다.

 

 

 

관감당과 영우를 돌아보고, 야외박물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난 뒤, 종택으로 들어가본다.

깨끗한 기와며 벽에 붙인 돌들이 아주 오래된 건물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1900년대에 지은 집이란다.

 

 

 

 

이곳은 종택의 정문이 아니라 측문이다. 현관과의 동선을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문인 것 같다.

 

 

 

 

문을 들어서자 오른쪽에 장독대가 보인다. 장독이며 묻어놓은 김치독이며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종택과 그 주변은 주인들이 구입한 물건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박물관이다.

안방 문 너머로 보이는 안마루의 전시품들과 돌확.

 

 

 

부엌과 연결된 마루에도 우리 조상들이 쓰던 물건들로 가득하다.

쌀 뒤주며 이층장, 소반 등 손때 묻은 물건들이 시선을 잡는다.

저런 이층장 하나쯤 안방에 두고 옷가지를 넣어두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종택 대문에서 본 안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이 건물도 아주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1900년대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특히 격자모양 유리문이 시선을 끈다.

 

 

 

안마루에 전시되어 있는 반닫이.

 

나무의 다양한 무늬와 질감, 장석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물건들이다.

 

 

 

 

문간채에는 농사일이나 살림을 할 때 필요한 도구들로 채워져 있다.

종택에 있는 전시물들을 바라보면서 어디서 이 많은 것들을 수집해서 전시를 했는지 궁금했다.

 

 

 

종택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들어간 유물 전시관 '충현관'.

 

 

 

전시관은 지하1층과 지상 1층, 이층으로 되어있다. 1층은 선생의 유물들, 지하층은 집에서 쓰던 유물들이 있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선생의 연보와 함께 가계도가 있고, 목판도 있고,

선생의 영정 및 관감당 원판 편액 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사궤장연첩.

 

 

 

 

선생의 문집들.

 

 

 

 

지하층의 유물들.


삼정승을 모두 지내셨으면 대단한 유물들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저 소박한 유물들이다.

선생이 청백리였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청백리의 표상으로 알려진 오리 이원익선생의 자취를 찾아간 '충현박물관'.

 이 종가의 이름을 왜 오리 이원익 종가나 종택이라 하지 않고 '충현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그곳은 안동의 종가들과는 다르게 이제 더 이상 한옥인 종택 건물에 종가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충현박물관'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적들이 많은 종택은 우리 조상들이 쓰던 공예품들의 전시관이고,

'충현관' 건물은 선생의 유물과 종가 소장 유물전시관이다. 

오리선생의 종가는 이제 개인 소유 개념인 ‘종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유하는 공간인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관리가 완벽하게 잘 되지는 않는 듯 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이런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종가의 어른들이 존경스럽다. 

 

 

※ 충현박물관의 모든 정보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충현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chunghye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