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마지막 가을빛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11. 17. 20:13

 

 

 

 

비 그친 가을의 끝자락,

 가는 가을을 잡으러 야외로 나가봅니다.

이제 붉은 빛을 띈 나뭇잎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어쩌다 남아있는 옅은 색의 잎들이 마지막 가을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이제 이 빛도 스러지면 가을은 영영 멀리 가버리겠지요?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마지막 가을빛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가을의 시 몇 편을 올려봅니다.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홍해리·시인, 1942-)


 

 

 

 

가을 노래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이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싶고

죄 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 없이
강이 흐르게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 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 때마다
한 움큼의 시들을 쏟아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가을은 깊어가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가을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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