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부곡

들녘에서

렌즈로 보는 세상 2015. 1. 7. 07:00

 

 

 

요즈음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의 풍경 중에는

 예전 내가 어릴 적 보던 풍경과는 확실하게 다른 풍경이 있다.

벼를 추수한 후에 볏짚을 거두어둔 풍경이다.

짚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게

하얀 비닐포장을 한 큰 덩어리가

논 가운데 군데군데 서있는 것이 새로운 아름다운 풍경이다.

 옛날 낟가리가 은은한 정이 풍기는 전원의 느낌이라면

비닐로 싼 볏짚 덩어리는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의 느낌이 난다.

작년 가을의 끝자락에 만난 지평면 곡수리와 수곡리 들판의 모습도 그렇다.

 

 

 

 

 

 

 

 

또 하나의 달라진 풍경은 볏짚을 옮기는 것이다.

예전 아버지가 등짐을 지고 옮기던 것과는 다르게 트럭이나 트랙터로 볏짚을 옮긴다.

흐른 세월만큼 많이도 달라진 요즈음 들녘의 모습이다.

 많이도 달라진 풍경이지만 그런 풍경에서도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전에는 벼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탈곡을 했기 때문에

벼가 익어서 베게 되면 논에서 벼가 바짝 마른 뒤 집으로 가지고 온다.

소나 사람이 등짐으로 지고 옮겨야 했기에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품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 좋은 날에 볏단을 서로 기대어 세워서 말린 후에

물 빼고 꾸득해진 논에 낟가리를 만들어 쌓아놓았다.

그렇게 쌓아놓은 벼는 다른 추수가 거의 끝날 때쯤이면 집으로 옮겼다.

탈곡을 하기 위해서다.

 

 

 

 

 

 

 

그 옮기는 작업이 만만하지 않다.

아버지는 지게에다 머리 위로 한참이나 올라가게 가득 쌓아서 지고

소등에도 하나 가득 벼를 지워서 앞세우고 타래이(고삐)를 몰고 오신다.

살던 동네가 산골이라

그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우둘투둘한 비탈길과 좁은 논둑길이 대부분인 그길로 

옮기는 일은 평야지대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생을 농사 짓는 일에 불평을 모르시고 주경야독하시던 아버지

그런 성실하시고 긍정적이시던 아버지가 계셨기에

9남매가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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