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후에 행궁을 걸었다.
아름다운 매화가 행궁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그 꽃그늘 아래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도 아름답다.
이렇게 매화가 필 때면
안동에서 전해오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와
관기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대요.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대요.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지요.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두향이는 18살 때였어요.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대요.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어요.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 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겠지요.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드디어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어요.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대요.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어요.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대요.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어요.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대요.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했어요.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대요.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어요.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어요.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지요.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 身 應 是 明 月 .
幾 生 修 到 梅 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선생이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어요.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선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대요.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어요.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어요.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지요.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어요.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지요.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답니다.
지금도 퇴계선생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답니다.
선생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애닳은 사랑을 잊지는 않는 것이
반가의 禮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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