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둘러보기

매화가 필 때면

렌즈로 보는 세상 2019. 3. 25. 07:00

 

 

 

 

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후에 행궁을 걸었다.

아름다운 매화가 행궁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그 꽃그늘 아래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도 아름답다.

이렇게 매화가 필 때면

안동에서 전해오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와

관기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대요.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대요.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지요.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두향이는 18살 때였어요.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대요.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어요.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 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겠지요.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드디어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어요.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대요.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어요.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대요.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어요.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대요.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했어요.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대요.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어요.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어요.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지요.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  身  應  是  明  月  . 

幾  生  修  到  梅  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선생이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어요.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선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대요.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어요.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어요.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지요.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어요.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지요.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답니다. 

 

 

 

 


지금도 퇴계선생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답니다.

 선생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애닳은 사랑을 잊지는 않는 것이

반가의 禮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