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그림이야기

[스크랩] 샤갈의 사랑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6. 29. 17:32

샤걀의 사랑...

 

7월 7일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생일입니다.

그의 연인 벨라는 아침부터 마을 근교를 돌아다니며 꽃을 꺾어 

커다란 꽃다발을 만듭니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보자기와 숄, 달콤한 과자와 생선 튀김까지

연인이 좋아하는 것 모두를 들고 마을을 가로질러 그의 집으로 갑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벨라는 잽싸게 파티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날이 자신의 생일인 줄 몰랐던 샤갈은 예기치 못한 방문을 받은 셈입니다.

종달새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벨라를 바라보다가

샤갈은 이젤 위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꽃다발을 들고 있던 벨라는 마침내 샤갈의 색채의 마법에 걸려서

한폭의 그림으로 되었습니다.

 

그 순간을 그린 그림에 ‘생일’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샤갈이 그린 그림은 단순한 생일 꽃다발을 든 벨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원한 신부인 벨라에 대한 깊은 사랑,

평생을 그의 마음을 지배할 영혼을 사로잡은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벨라를 바닥에서 떠오르게 했고,

샤갈 자신도 그녀를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날아 오른 샤갈은 그녀의 귀에 살짝 키스하며 속삭입니다.

그 열정적인 고백에 깜짝 놀란 그녀는 눈이 동그래졌고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창밖의 풍경들, 지붕, 안뜰, 교회, 꽃밭도 그들과 더불어 흘러갑니다.

 

Birthday, 1915, Oil on canvas, 81x100cm


작품의 초안을 잡고 난 뒤에 샤갈은 벨라에게 말합니다.

“내일 또 와주겠어? 다른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가 함께 날아다니는 그림을.”

그리고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소박한 목조 건물들. 멀리 보이는 교회, 목책, 울타리 옆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일을 보는 남자.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려지는 러시아의 조그만 유태인 마을 비테브스크의

겨울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풍경 위를 날아다니는 두 연인은 바로 샤갈과 벨라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하늘을 나는 환상  모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꿈꾸는 최고의 환상일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신랑과 신부, 그리고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경-

이 그림 속에 이미 샤갈이 앞으로 그릴 그림의 모티브는 모두 다 담겨 있습니다.

샤갈의 작품 세계의 윤곽을 결정지은 것은 바로 그의 첫 사랑이자 ,

첫 아내인 벨라와의 사랑이었습니다.

 

Over the Village, 1914-18, Oil on canvas, 141x198cm


샤갈은 “나의 인생‘이라는 자서전에서,

그리고 벨라는 ”첫 만남“이라는 글에서 사랑의 첫 순간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벨라가 친구 테아의 집에서 샤갈을 처음 보았을 때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머리가 타는 것 같다.

 

 누군가가 가느다란 회초리로 나를 때리는 듯, 온몸이 아프다.

“ 그녀가 평생 앓아야 하는 사랑이라는 열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샤갈이 벨라에게 첫 말을 건넵니다.

"당신 목소리가 아름다워요. 당신 웃음소리를 들었거든요.” 수줍은 벨라는 도망치듯이 친구의 집에서 뛰어나와 버립니다.

 

그녀의 뒤로 “눈꼬리가 아몬드처럼 갸름하고”, “막 튀어 오르려는 짐승” 같은 남자가 따라옵니다.

반짝거리는 하얀 이빨로 자기를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달려가는 그녀의 귀에 그의 이름은 “크고 강하게 종소리처럼” 울립니다.

 

그녀는 이것이 한 번쯤 왔다가 지나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사로잡아 버릴 운명의 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끝내 승복하고만 그녀는 이렇게 씁니다. 

“머리가 어지럽다. 나는 이제 창가에 서 있지 않고, 구름에게로 떠오른다.

그 남자의 구름에게로....... 나는 긴 잠을 잔다.

 

그리고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  가난한 집안의 9남매의 장남인 샤갈과 유복한 상인의 총명한 딸인 벨라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을 다니던 벨라는 연극배우의 꿈을 접고 샤갈과 프랑스로 떠납니다.

벨라 로젠펠트가 아닌 벨라 샤갈이라는 “다른 인생”을 그녀는 살기 시작합니다.

 

샤갈이 이후에 썼듯이 해가 지날수록 그녀의 사랑이 그의 예술 속에 스며들어갑니다.

샤갈의 그림들 자체가 바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진솔하고 아름다운 기록들입니다.

그가 그녀를 처음 얻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듯이 샤갈은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 1917-1918, oil on canvas, 233x136cm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부였으며 뮤즈였고 당나귀, 수탉, 꽃다발, 다리와 마을의 종소리였습니다.

복잡한 현대 미술의 계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결국 ‘에꼴 드 파리’라는 불투명한 묶음으로 표현된 샤갈의 작품들은 벨라와 함께 한 영원한 사랑의 변주곡이었습니다.

 

 결혼식 예복을 입은 신부와 그 신부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신랑은 빠지지 않고 그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샤갈은 신부인 벨라를 꼭 끌어안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그곳이 파리의 하늘이든, 비테브스크의 하늘이든,

성서 속의 이야기 속이든 단 한순간도 신랑은 신부를 놓지 않습니다. 절대로.

 

    The Bride and Groom of the Eiffel Tower, 1938-39, oil on Canvas, 150x136.5cm

 

그러나 샤갈의 현명하고 아름다운 유대인 신부는 1944년 미국 망명 중에 불현듯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러 가지 사물들을 정리를 합니다.

놀란 샤갈이 묻습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많은 걸 정리하고 있소?”

그녀가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무엇이든 필요한 걸 제때 찾아낼 수 있지요.

” 그녀는 자기 없는 샤갈의 삶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29년을 함께 한 그녀는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 충격으로 샤갈은 한동안 붓을 들 수 없었습니다.

 

Homage to the Past, 1944, Oil on canvas, 71x75cm

 

그녀를 잃은 깊은 슬픔은 “Homage to the past"라는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세상은 빛을 잃고 깊은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비테브스크의 풍경도 슬픔으로 침묵하고 샤갈은 신부대신 묘비를 끌어 안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그의 뮤즈인 벨라를 볼 수 있습니다.

샤갈을 바라보는 벨라의 변함없는 온유한 눈빛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샤갈의 애절한 시선이 교차됩니다.

이 가슴을 에는 슬픔은 푸르고 푸르러서 모든 빛이 잦아들어 채도가 낮아진 서글픈 푸른색입니다.

 

벨라를 잃은 후 한 동안 그의 화면은 이 깊은 푸른색이 지배합니다.

후에 이 푸른색은 정제되고 단련되어서 가히 ”샤갈의 푸른 색“이라 할 맑고 환상적인

색채에 이르게 됩니다.

 

Le Champ de Mars, 1954-55, Oil on canvas, 149x105cm


벨라가 세상을 떠난 뒤에 샤갈은 다른 여인들을 만납니다.

샤갈의 매니저 역을 하던 딸 이다는 아버지가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를 돌보아줄 사람을 적극적으로 구해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샤갈은 이미 평범한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젊은 버지니아는 유명한 화가의 아내, 사교계의 중요한 호스티스이자 작가의 섬세한 관리인이어야 하는 역할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여인, 바바가 그의 무덤을 지켜줍니다.

그런데 버지니아를 만난 뒤에도,

바바를 만난 뒤에도 샤갈은 비슷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립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의 여인의 얼굴은 왠지 자꾸 벨라의 얼굴과 겹쳐집니다.

 

Artist at his Easel, 1955, Oil on canvas, 55x46cm

 

벨라가 죽은 지 11년이 지난 1955년의 작품 “Artist at his easel"에서도 한 여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샤갈을 찾아와 부드럽게 위무합니다.

샤갈은 기꺼이 그녀에게 기댑니다.

그런 샤갈의 표정에는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The Painter, 1976, Oil on canvas, 65x54cm

 

그가 89세에 그린  회고적인 작품인 ”The Painter"(1976)에서 다시금 신부를 꼭 끌어안고 있는 신랑의 모습과 수탉이 등장합니다.

마치 보통 명사로서 “화가”가 그려할 것은 오직 “신랑과 신부-사랑”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말입니다.

 

 

벨라와 샤갈이 함께한 사진입니다.

영혼을 보듬는 듯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

그 깊이는 그런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속에 샤갈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림 속에서처럼 그녀를 꼭 그렇게 끌어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The Bridal Couple, 1927-35, Oil on canvas, 148x80.8cm


 


출처 : 들꽃 향기
글쓴이 : 세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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