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둘러보기

봄나들이

렌즈로 보는 세상 2008. 12. 29. 18:32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스한 봄날

개나리 흐드러지게 핀 돌담 밑을

줄을 지어 종종 거리며 달려가는 병아리 가족의 모습을 그리게 하는

어릴 적 수없이 불렀던 동요 봄나들이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수없이 불렀던 국민의 노래를 안동분이 지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안동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우리나라 현대 음악의 선구자인 권태호선생은 1903년 9월 16일 안동시 율세동 17번지에서

이 지방 초창기 기독교인이자 평양신학교를 거쳐 목사가 된 권중한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대요.

 

예배당(안동교회)의 풍금소리에 매료되어 8세 때 선교사부인으로부터 풍금을 배웠대요.

어릴 적 싹튼 음악에의 열정은 22세가 되자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로 학비를 벌어가며 동경의 고등음악학교에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선생과 함께 공부를 하셨답니다.

 

재학 중 동경에서 개최된 '베에토벤 100주년 기념 대음악회'에 테너 가수로 활약했고,

세계의 대가들이 서는 무대인 '동경청년회관'에서 제1회 독창회를 열어 대호평을 받았답니다.

 이어서 일본에서 두 번 더 독창회를 하였으며

 1928년 5월 12일엔 서울 YWCA에서 현제명선생 보다 1년 먼저이고 한국음악사상 두 번째로 독창회를 하셨대요.

 

1931년 28세 때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했고

1940년 모교인 일본고등음악학교의 한국인 최초의 음악교수가 되어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대요.

 

해방 후 귀국해서 대구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며 후진양성을 하였으나

 6.25가 발발하자 학원건물이 미군에 징발되어 영영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러나 선생의 음악활동은 성악과 연주에 국한되지 않고 작고 부분에서도 눈부신 활동을 하셨어요.

 

음악하교 재학시절 '봄나들이' '꽃피는 삼천리' 등을 작곡했고,

베를린올림픽 때는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개선가를

 '대한아들 행진곡' '해방의 노래' '대구시민가' '경주시민가' '대구능금노래' '무찌르자 오랑케'

 '안동농림교가' 안도중학교가' 등 200여곡에 달하는 곡을 지어답니다.

이런 활약을 높이 사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하셨대요.

 

선생은 압박당했던 민족의 어렵던 시대에 주옥같은 음악을 남기고 1972년 2월 29일,

지금은 수몰된 예안면 신양동에서 지병인 중풍과 싸우다가 70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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