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계향 편지들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6. 30. 11:20

 

 

안동 민속박물관에서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주관한 정부인 안동장씨에 대한 특강을

지난 3월 23일부터 격주 간격으로 하고 있다 .

강사인 정동주선생님은 많이 알려진 그분의 시가 아닌

편지들을 매번 한 편씩을 소개하고 있다.

그 분이 쓴 편지들을 보면 그분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桂香 편지 1

 

내고향 학가산 봄 편지에는

매화분에 물주라시던 그 어른 말씀이

물굽이마다 적혀 있었다.

 

성인을 닮으려들면 언젠가 그리 되는가

그 믿음 그 사랑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보고접다 보고접다 다녀가라 하더이다.


 

 

 

桂香 편지 3

 

낙동강은 칠백의 길에서도 쉬어가잔 말 없듯이

새는 울어도 눈물없고 소리없이 피는 꽃들은

보고 듣는 기쁨으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싶었다.

 

여자로 태어나 사는 내 안에 강이 흘렀다.

 

그 강물로 적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슬픈 것의 눈물이 되고, 기쁜 것의 소리가 되었다.

안으로 깊어져 목마름 적셔주는 눈물이고 싶었다.

 

 

桂香 편지  4

 

봄날엔 배고픈 아이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떠다니어 울고

 

여름이면 병든이들 장맛비속에서

절룩절룩 모기떼처럼 울었다.

 

가을날엔 버려진이들이 세상 원망하며

철새따라 울음울고

 

겨울엔 피난인들 눈자국 빈들판 헤매며

바람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천민들은 사시사철

자근자근 짓밟히며 피울음 울고

 

난 배운 것이 가진 것이 부끄럽고

두렵고 아파서 따라 울었다.

 

다만 그 세상 위에 도토리묵 한 그릇 마련해두고

따라 울었다.

 

한 백년 조선땅은 울음으로 역사를 썼다.

 

 

 

桂香 편지  5

 

남 업신여기는 것은 다만

사랑이 모자라서 생긴 마음의 모진병

사랑은 낮은 곳에 산다네

사람이라서 외롭고 가난한 것이어니

사람이니까 나누고 돌봐주는 것

혼자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네

백성이 있어 임금이 임금답고

가난한 이가 있어 부자도 되나니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동무라네

 

 

桂香 편지   6

 

내 안에서 빛났던 여든 두 해는

조선의 마음으로 짠 고운 안동포

性理의 낙동강을 씨줄로 세우고

그 어른 西厓 우뢰같은 침묵 날줄이 된 안동포였다

 

내 몸은 세상을 의지했고

마음은 이웃에 업혀서 행복했나니

여자의 눈으로는 꽃을 보았지만

어머니 눈을 얻어 하늘을 보았다

 

고사리는 꺾이면서 천년을 누리고

쑥은 뜯기면서 천년을 살데

세상을 딛고, 이웃을 안고

쑥처럼 고사리처럼 천년을 살고 싶었다.


 

桂香 편지   7

 

山에 가면 그 山 높이

물에 가면 그 물 깊이로

목마른 그리운 바람

흔들어 내는 눈물

목소리 山에 두고

발자욱 강물에 풀며

허공 태운 대지에

꽃씨를 심는 그대여

 

 

桂香 편지   8

 

사람은 밥으로 하늘을 담는다

밥안에 하늘이 살고

하늘 안에 사람이 산다

 

밥에는 맛의 우주가 산다

혼자 먹으면 독이지만

함께 먹으면 약이다

 

맛을 아는 것은 생명을 이태하는 것

맛을 아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사람과 하늘이 맛안에 사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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