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스크랩] 봄날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8. 31. 15:43


 

 

 

 

 

李外秀가 그린 그림들이다.

번개를 잡아채는 짧은 순간에 하나의 그림이 나와야 하며 자신이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아닌 붓으로 하여금 자신을 쓰게 해야 한다는 그의

이러한 그림들은 소박한 동양적 정서와 함께

禪에 깃들어 있는 지극한 간결함과 평화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의 많은 소설들이나 명상록들은 매니아층마저 형성하는데

칼, 장수하늘소,들개,벽오금학도 ...어느것하나 독특하지 않은것이 없다. 

그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그의 긴 흑빛의 머리칼과 무신경한 옷차림

그리고 세수도 하지 않은듯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무는 모습이 떠올려진다. 

또한 전설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몇몇 奇行들..

글을 읽다보면 참으로 기상천외한 자신만의 느낌과 감성을 지닌

독특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李外秀.

돌이켜 생각할수록 저급한 육탐만이 가득한 인간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꿈꾸는 식물같은 그의 서정의 날개짓이 때로 안타깝지만 그는 행복하다.

세상엔 그의 감성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주 많이 있으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안구가 함몰되어 있었다.

거리에 나가면 본의 아니게 남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각양각색이었다.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혐오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자주 곁눈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시선을 회피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저물녘 돌담길로 숨어드는 굴뚝새는 검은색이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한밤중 논둑길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은 노란색이다.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소나무에는 소가 열리지 않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개머리에는 개뿔이 돋지 않는다.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진체(眞體)가 아니거늘

한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며 양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나는 조금도 괘념치 않고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화살표 中-

 

 

 

봄은 내게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이다.
봄에 피어나는 세상의 모든 꽃들도 내게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나는 살구꽃을 보면 걷잡을 수 없이 강렬한 살인충동에 사로잡힌다.

지천에 햇빛이 생금가루처럼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봄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만발해 있는 살구꽃.
꽃잎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함박눈처럼 어지럽게 허공에 흩날린다.

나는 봄이 되면 자주 살구꽃잎들이 함박눈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내가 살해한 시체를 간음하는 몽상에 사로잡힌다. …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살아간다.
사랑이 욕망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성욕이라는 괴물을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기 위해 조제한 일종의 최음제(催淫劑)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최음제에 속아서 알몸이 되고 최음제에 속아서 애무를 하고
최음제에 속아서 성교를 한다.

사랑은 허명이요 착각이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일체의 행위들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조장하는 번식놀이에 불과하다.


-암행일지(暗行日誌) 中-



 

 

 

 

 

 


 

밤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 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봄날의 회상 中-

 

 

 

 

 

 

살아가며 닥쳐오는 온갖 욕구를 떨쳐버리고 분별과 사려가 낳은 기쁨과 안락을

취한다면 그리고 분별과 사려마저 연못위로 던져버리고 그저 고요한 마음의

평정만을 느낄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禪이란 것인가.

  

한인간의 내면세계를 알아본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그의 얼굴 표정과 행위를 통해 일말의 단서를 잡아 챌수는 있겠지만

그의 영혼이 숨쉬는 소리를 내가 어찌 감히 엿들을수 있단 말인가

한인간은 곧 하나의 우주가 될수 있으니 수억개의 별들이

인식밖에서 반짝이는 그 상상 이상의 관념을 어찌 알아낼수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느 누군가에 대해 지독히 알고 싶었던,

그의 주름진 뇌에 메스를 대어 해부해 버리고 싶었던 그 집요한 욕망마저

이미 저버린 벚꽃처럼 사그라져 버린 지금 마음은 다시 심연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래 인정해야겠지..그건 관념의 도피나 포기가 아니란걸 안다.

봄은 봄인가 보다. 갖가지 다채로운 꽃과 나무들 그리고 들풀들이

햇살아래 연록의 자태를 뽐내며 세상을 온통 뒤덮을 날들이 가까워 온다.

갑자기 어린날 그리도 지천에 널려있던 아카시아 꽃향기가 많이 그리운데

내 행동 반경 어느 주변에도 이제는 찾을 수 없다는 섬소년같은 고립감.

술통속의 디오게네스처럼 단순히 삶에 즐거움이 없으면 불행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지만 특별히 좋은일도 나쁜일도 없는 루틴한 일상의 연속이다.

 

 


 

 

 

 





 

 

 

 

 

 




 

출처 : 내게로가는 旅行
글쓴이 : Bensonhurs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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