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살던 산골마을에 눈이 내리고
인숙이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아버지의 싸리비가 말끔히 쓸어놓고
나는 그 길따라 깡총거리며 놀러가고
눈 내린 날 인숙이와 날 이어주는 싸리비
아버지의 싸리비가 생각나는 시가 있어 눈 사진과 함께 올려봅니다.
시는 블로그 이웃 산마을님의 시집 "꽃의 인사법"에 수록 된 시입니다.
싸리비
산마을 서동안
하릴없는 날
앙탈을 부리는 겨울을 쓸어 낼 요량으로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몇 개 잘라
양지 마당에 앉아서 빗자루를 맨다
눈치 없는 길고양이
슬금슬금 양지쪽으로 다가와
뜨락 한 귀퉁이에서 졸음 모은다
빗자루 휘둘러 쫓아 버릴까 하다가
가끔 어머니 눈칫밥 얻어먹는 것도 안타깝고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라는 말이 생각나서 가만히 두고
마당을 쓸어 본다
제법 눈이 잘 쓸린다, 티끌도 잘 쓸리고
"저놈의 고양이 쥐도 못 잡으면서 또 왔네!"
"야야, 고양이 얼른 쫓아 버려라"
어디 쫓아 낼 것이
밥값 못하는 길고양이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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