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귀하고 땔감도 귀하던 산골마을에 살던 우리는
항상 씻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했던 어린시절이었다.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었지만,
그 물을 규모 있게 나눠 쓰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었다.
찬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지면
아침이나 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데워야만 씻을 수 있다.
그러나 땔감을 아껴야
겨우내 나무를 해야 하는 남자들의 힘듬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빈 솥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조달하는 것은 항상 소죽 솥뚜껑의 몫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소죽을 끓일 때
여물을 뒤집고 난 후 뚜껑을 닫을 때
뒤집어서 닫고 그 위에 물을 부어 데워서 세수를 하는데,
식구는 많고 물은 적은지라
따뜻한 물 삼분의 일에 차거운 물 삼분의 이를 타서
찬바람 몰아치는 마당에서 씻자니 항상 고양이 세수하듯 대강하고
남은 물로 발을 헹구는 정도로 씻으니,
일 주일이 되기 전에 까마귀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발에 때가 끼인다.
그렇게 때가 묻은 발을 그냥두면 이불도 잘 더러워지고 하니
우리는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날마다 돌아가면서 발 씻는 날을 정해놓고 발을 씻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설거지도 끝나면
설거지 한 구정물을 소죽솥에 붙고
남아있는 불기운에 물이 따뜻해지면
솥뚜껑을 비스듬히 열어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발의 때가 불어터질 때를 기다려 발을 씻으면
그 때는 순식간에 벗어지고 소죽물은 걸죽해진다.
그렇게 때를 씻고 맑은 물로 헹구고 방에 들어섰을 때의
그 상쾌함이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고,
우리 남매는 누가 가장 깨끗하게 씻었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물도 불도 흔전만전 쓰고 있는 지금,
그 냄새나는 구정물에 발을 씻던 그 때가 그리워서 적어봤네요.
내 어릴적 소죽을 끓이던 사랑정지와 너무 닮은 모습이지만
그 때는 사람들도 활동하는 공간(발 씻기 등)의 일부라서 이렇게 더럽진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