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겨울 밤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1. 12. 14:54



요즈음 저녁으로 가족끼리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주로 TV를 보기위해서다.

 

텔레비전 앞에 가지런히 앉으니

서로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는 할 기회는 거의 없이

눈은 TV에 고정되어 있으며 내용을 파악해가며 보아야하니

설령 자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TV만 쳐다봐야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족간에 대화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이런 가족관계이다 보니,

옛날 내가 어렸을 때의 우리 집

밤 분위기가 이렇게 긴 겨울밤이면 간절하게 그립습니다.

 

 이렇게  눈이라도 소복이 쌓인 밤이면 더 좋았구요 

 

 옛날에 이렇게 기나긴 겨울 밤은

가족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밤이었어요.

 여름보다 배나 더  긴 겨울 밤에

우리 가족은 듬북장에 무 시래기 따림이 국

된장국을 노오란 조밥과 함께 배부르게 먹고 나면,

넓고 뜨뜻한 안방으로 각자 할 일을 들고 모여듭니다.


 아버지는 일 년 농사지을 때나 지붕 이을 때 필요한 새끼를 꼬기 위해

물에 축인 볏짚을 들고 오시고,

나이가 찬 언니는 동생들에게 짜 입힐 손뜨게질 감이나

시집갈 때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십자수 놓을 것을,

어머니는 빨아놓은 떨어진 양말짝들을 들고 오셨어요.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어린 우리들도 뭔가를 해야겠기에

겨울방학 숙제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나와서

방 가운데 있는 호롱불 밑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서

숙제를 하거나 국어책을 읽거나 했어요.

 

 우리가 밝고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나면

언니와 엄마는 불이 밝게 비쳐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서로 마주보고 양옆으로 앉고

어두워도 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아버지는

윗목에서 초성 좋은 소리로 사서삼경의 한 구절을 읊거나

옛날이야기를 장단삼아 새끼를 꼬셨어요.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시던 어머니는

바닥의 앞부분이 심하게 떨어져서 도저히 신을 수 없는

양발의 발등을 오려서

그래도 쓸만한 양말의 밑바닥에 덧붙여 기워놓고,

발가락 부분이 심하게 떨어진 어른들 양말은

앞을 도려내고 작게 줄여 아이들의 양말로 만드셨어요.


 십자수를 놓던 언니는

무명보다는 올이 촘촘한 옥양목에

십자수를 놓자니 일정하게 올을 세어 수를 놓아야

예쁘게 놓을 수 있기에

올을 세느라 호롱불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앞머리를 그을리는 일이 자주있었고,

철 없던 우리는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노린내가 나면

또 언니가 머리를 태웠다고 깔깔거리며 웃기가 일쑤였어요.


  우리가족은 각자 할 일을 하면서 그날 자기가 겪었던 일도 이야기 하고,

 다른 식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도 들으면서 하루를 마감했지요.


 특히 낮에 정신없이 뛰어놀던 우리들은

그렇게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가 고파지면

고방에 있는 언 감홍시를 갔다 먹고는 공부는 하지 않고 

새끼 꼬기를 마친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베고 잠들곤 하였지만

 어른들은 공부를 하지 않고 잠만 잔다는 둥 그런 잔소리를 하지않았답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렸을 적의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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