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고드름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1. 20. 21:36

 


 요즈음의 집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우리 집도 실내에서 모든 생활을 하다보니 날씨가 추운지 어떤지를

알아볼려면 옥상에 올라가서

 잠시 기다려보고 판단하곤 했었는데

얼마 전에 아주 편리한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우리 집 바로 뒤집은 목욕탕이라

실내의 뜨거운 김이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창문의 작은 틈새로 빠져나올 때는

제법 큰 물방울이 되어 나오나 봅니다.

 그 물방울이 날씨가 따뜻하면 아래로 떨어져

눈에 보이게 흔적을 남기진 않지만

이렇게 날씨가 추운 날에는 고드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곤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고드름의 길이를 보고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고 외출을 할 때

 옷을 입는 것에 참고하곤합니다.

그리고 고드름이 많이도 달려있던

어릴 적 우리 집 초가 추녀 끝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그 때의 산골의 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초가집이었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거둬들인 곡식의 바심이 끝나면

동지가 가까워지고,  

아버지는 하얀 무명솜옷을 입고

열심히 햇볏집으로 이엉을 엮으셨고

철없는 우리들을 서리서리 엮어가는 이엉 사이로

숨바꼭질 하듯이 뛰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그 때의 그 풍경은 참 평화로웠고

특히 지붕의 마지막 마무리를 할 용마루 부분을 만들때는

그 펼쳐진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이엉을 엮어 헌 지붕을 벗겨내고

새 지붕으로 갈아놓으면 초가 집은 한결 태가 나고 깨끗해졌고

그걸 비라도 내려 씻어낸 후에 눈이 내리면 그 풍경은 너무도 아늑했습니다.

 

겨울이 오고,지붕가득 내려앉은 눈들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흘러내릴 때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추녀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는데,

 눈이 와서 썰매도 타러가지 못하던 우리들은

그 고드름을 꺽어서 칼싸움도하고,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먹기도하며 놀았습니다.

특히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던  그 영롱한 고드름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고드름이 길게 달린 모습을 보면

"고드름이 길게 달린 것을 보니 올해도 대풍이겠구나!"

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뒷집 고드름의 길이로 보면 올해도 풍년이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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