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스크랩] 내 고향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1. 22. 16:39

내 고향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내달리던 청량산 자락이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끝자락에 자리한 동네.


볕이 잘 들었는지 양곡(陽谷)과 물 맑은 호수 하나 없었지만 명호(明湖),

산등성이 너머로 가름곡으로 가는 세 갈래 길에 자리하여 삼거리라 불렀던 곳이다.

아침저녁으로 봉화와 재산을 오가는 버스가 고작이었고 어쩌다 제무시(GMC)라도 지날라치면

비포장 길을 따라 먼지 자욱한 트럭 뒤를 헉헉 내달리던 일천구백육십 년 후반,

허리를 꺾어 자동차도 만들고 송사리를 잡아 두기도 했던 타이야표 검정고무신이

이 세상에 유일한 신발인줄 알았는데 안동으로 이사하면서 난생 처음 운동화를 신고 떠났던 고향에

이제 비라도 올라치면 허리가 묵직한 나이가 되어 검정 구두를 신고 다시 찾았다.

 

맹호표 백두산 연필에 침을 묻혀 뒷장에 자국이 남도록 꾹꾹 눌러 받아쓰기를 하고,

구구단 외는 소리 왁자하던 일학년 일반 교실에는 폐교가 되어 낯선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명호초등학교 고양분교.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내달리면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르던 그 넓은 운동장이

담배 한 대를 채 못 피웠는데 다 걸어버렸다.

여기 어디쯤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계집애들의 고무줄을 싹뚝 자르고 도망갔었는데

 "나쁜 놈아,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소리치며 따라오던 분남이와 종희는 지금은 어디에서

엄마로, 아지매로 나처럼 세월에 삭아들고 있을까?

보릿고개 핍절한 세월을 넘어온 까닭인지 어느 정도 살만한 때가 되었어도

어른들은 밀을 도정한 거친 가루로 개떡을 만들어 먹거나

좁쌀 두 어 줌에 물은 몇 바가지를 부은 조당수라는 것을 잊을 만 하면 먹었었다.

먹고… 돌아서서 앞산에 떠오른 달이 추녀 끝에 걸릴 무렵이면 벌써 배가 고파

어매를 졸랐던 그 시절에는 학교를 마치면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이나 네모난 밀가루 빵을 하나씩 나눠 주고 했다.

한 입 베어 물고 한달음에 집으로 내달아

"어매, 이거!"하고 내밀면 밥 위에 쪄서 주셨는데

 이제껏 살아오면서 소금간만 된 그 빵 맛보다 더 좋은 것을 먹어 보았나 싶다.


여름날 저녁을 먹고 제 몸보다 큰 로케트 배터리를 검정고무줄로 묶은 채

장롱 위에 모셔진 라디오에서 재치문답을 듣거나 김영운, 고춘자의 만담을 들으며

찐 피검자를 입에 물고 모깃불 연기가 자욱한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달을 쳐다보며

 아폴로 우주선을 찾으려 애를 쓰던 일천구백육십 년 어느 때.

겨울이면 먹들이 화투를 치는 어른들 틈에 끼여 자다가 무얼 먹는 듯 하면

잠에서 갓 깬 듯 부스스 기지개를 켜며 아부지를 바라보면 삼양라면 국물이며 얼큰한 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었지 …

.

칠하다 보면 금세 뭉그러져 버리는 신신파스 대신에

단단하고 색깔도 예쁜 왕자파스를 사달라고 조르면 우리 아부지,

감자 캐서 팔아서 사 줄 테니 조금만 더 써라, 지황 농사 끝나면 사 주마,

고무공 하나 사 달라고 여름에 조르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가을에야

봉성 장에서 사 오셔서 내밀던 우리 어매의 손에 쥐어진 오돌토돌 곰보 고무공.


어느 봄날이었나?

집집이 무쇠 솥뚜껑을 들고 머리에 이고 지고 고감리 산에 동네 어른들 따라 화전놀이를 간 때가?.

세 발 지게 돌을 놓고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다음 대가리 자른 무에

들기름을 찍어 솥뚜껑 위에 두르고 진달래 꽃잎이며 이름 모른 푸른 잎사귀를 얹고

밀가루 반죽을 부으면 노릇노릇 꿀맛 같던 그 전병들을 잊을 수 있을까?

검은 무쇠 솥뚜껑에 동그마니 부어진 밀가루 반죽 위로 분홍빛 진달래꽃에 파란 이파리들이

동그랗게, 동그랗게 익어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들리던 산새 울음소리에 문득 쓸쓸하다, 여겨지던 일천구백육십 년 후반 어느 언저리...


지금도 어둑한 산자락을 들치면 시렁에는 메주가 여남은 덩어리가 짚으로 만든 끈에 매달려 있고

설이 다가올 무렵이면 하루에 몇 번씩 물을 주던 콩나물시루가 검은 보자기에 덮힌 채 자라고 있다. 

병에는 반쯤 담긴 석유가 무명실로 병 주둥이에 끈을 만들어 벽에 매달려 있는 그 아래,

신문지만을 바른 벽에는 국회의원 김창근과 국회의원 박해충의 사진이 박힌 한 장짜리 달력이

해가 바뀌어도 나란히 붙은 그 아래, 그을음 나는 호롱불 불빛에

뜻도 모를 삼국지를 읽거나 김두한 이야기를 적은 책, 혹은 고우영이 그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읽으며

입이 찢어져서 죽은 이승복이를 생각하며 책에 코를 박고 잠이 들고

어쩌다 잠 깬 이른 새벽이면 아부지가 끓이시는 쇠죽냄새가 구수하고

허연 무명바지저고리에 삽 한 자루 어깨에 걸친 채 논물 보러 나가신다. 지금도.


불쑥 찾았다가 가슴만 뻐근해져 돌아가는,

백미러 저 너머로 멀어져가는 내 고향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삼거리,

청량산 드센 자락이 내달리다 주저앉아 가쁜 숨을 고르던 거기에 자리한 동네 … .

황량한 국도변에 주저앉았어도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고 지금도 팅커벨이 살고 있는

내 영원한 모천, 영원히 나, 늙지 않을 에버랜드.

출처 : 가자 안동으로
글쓴이 : 미루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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