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초가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9. 6. 22:51

 

초  가

                                  - 이 육사 -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고성(古城)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어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엄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네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빰 위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 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 내강에 씨레나무 밀려 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로 흘러 간 몇 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北極)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안동이 낳은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 육사 이원록

그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

 많은 문인들이 변절했지만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국내와 국외를 떠돌았던 그는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 속에는 늘 살아 움직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시 초가

지난 웅부공원 음악회에서 너무 감명 깊게 들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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