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모곡

어매의 쑥털터리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5. 8. 07:22


 

 

또다시 다가온 어버이날

이제는 저세상으로 가시고 안계신 어매가 그리운 날입니다.

 

내 어릴적 봄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엔 봄이 오는가 싶으면 바로 여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빨리 더워지는 날씨를 보며

그 길었던 봄날에

힘든 일과 영양부족으로 구혈이 돋아 혓바닥이 갈라져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던

어매가 즐겨 해먹던 쑥털터리가 생각납니다.

 

 

 

 

 

 

농촌에서는 비교적 한가한 겨우내  영양과 체력을  비축하여

봄을 맞이하지만

가을 걷이한 밭에 남아있는 깨뿌리, 서숙뿌리, 고추대궁 뽑아내고

사과나무 전지 한 가지 줍고, 아버지를 도와 논둑 다듬는 가래질을 하고 나면 그 체력은 바닦이 나고 맙니다.

 

 

 

 

 

 

가래질을 한 논에 볍씨를 뿌릴 때 쯤이면 어매는

항상 혓바닥에 구혈이 돋아 짭고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입맛이 없어했습니다.

 

바쁜 일철에 일은 해야하고 음식은 먹지 못하니 하루하루를 힘들어하던 어매는

들일 갔다 오는 점심 때나 저녁 무렵에 짬을 내어

논둑이나 밭둑에 파릇파릇하게 고개를 내미는 애기쑥을 뜯어와 쑥털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여름 농사지어 빻아놓은 밀가루에 소금과 사카리를 섞어 바가지에 담아

깨끗이 씻어 대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쑥에 다박다박 묻혀

가마솥에 밥이 다 되어 갈 때쯤 얹어 밥 풀 때 꺼내어 밥 대신 먹고

나른한 봄에 기운을 차리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 왜 저렇게 힘들어 하시며 일을 할까

일꾼도 있고 아부지도 계신데 

 깔끔하게 차리고 집안 청소나 깨끗이 하고 우리 밥이나 맛있게 해주면 좋을 껄'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 내 어매 나이 되어 자식 키워보니 그 마음 알 것 같으나

어매는 벌써 저세상으로 가고 계시지 않습니다.

 

 

어매가 즐겨먹던 그 쑥털터리는

어쩌면 우리들의 가난했던 어매들이

' 밀가루를 아껴 먹기 위해 쑥에 묻은 밀가루를 딱 필요한 만큼만 묻히고 털어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함께 해봅니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언제 봄이 올까 싶어 고개 내밀고 기다리던 봄인데

봄이 왔다고 느끼는 것도 잠시 벌써 낮으로는 짧은 팔을 입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꽃이 피니 봄이지 두꺼운 옷을 벗자마자 봄이 물러가는 것 같아 아쉽네요.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도덕산 자락 응달에 아직 보들보들한 쑥이 있어 뜯어다가

 예전 어릴 적  즐겨 먹던 쑥털터리를 만들어 보았어요.

 

작년에는 쌀가루를 빻아놓고 묻혀먹었더니 쑥에 다박다박 묻지 않아서 올해는 밀가루에 묻혀서 쪘네요.

 저는 쑥털터리를 만들 때 쑥만 찌지않고 집에 있는 이것저것을 넣어서 함께 찐답니다.

호박고지도 넣고

울타리콩도 넣고

고구마도 넣어서 말이지요.

어매의 쑥털터리가 오직 쑥과 밀가루로만 만든 것에 비하면 많이 진화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