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모곡

어매의 단지(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와 독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1. 29. 07:46


 

 

 

이렇게 추운 날이면 어매 생각이 많이 나지요.

늘 근감절약하시던 어매의 모습 때문에 말이지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9남매 키워 교육 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느라 어매는 늘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지요.

그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매의 모습은 어매의 단지들이 말해주었지요.

 

 

어매의 힘의 원천이었던 고방(곳간)에 가면 가득한 단지들에서 그 근검절약을 체감할 수 있었지요.

'삐그덕'하고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간 고방에는 깨끗한 단지보다 깨진 단지들이 더 많았지요.

금이 간 정도로 깨진 단지는 철사로 묶어서

더 심하게 깨진 단지는 시멘트로 땜질을 해서 사용했지요.

이런 깨진 단지는 지난 가을 거둬들인 곡식을 바심(곡식의 낟알을 떨어서 거두는 일)하여

햇살 쏟아지는 멍석에 말려서 보관하는데 사용했지요.

 

 

 

한 푼이라도 아껴야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어려운 시절에 부억 구석에 있는 물독으로 쓰던 항아리와 고추장 단지에는 아예 뚜껑이 없었는 지도 모릅니다.

다리 부러져서 못쓰게 된 개다리소반이 뚜껑이 되기도 하고 못 쓰는 냄비뚜껑으로 덮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절약이 몸에 밴 어매지만 된장독이나 고추장 단지는 철저히 관리했지요.

행여 구데기라도 생길까봐 언제나 푸새질한 광목으로 만든 장빼(독을 덮는 보자기)로 팽팽하게 묶어놓았지요.

그래서일까? 우리 집 된장은 언제나 구수하고 달달한 맛으로

동네에서는 '원곡댁' 장맛이 최고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지요. 

 

 

 

어매의 부엌에 있던 이 작은 백자는 어매의 손에 있던 유일한 자기였지요.

부엌의 나무 찬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이 항아리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우리집이 입식부엌으로 개조되기 전까지 고추가루 단지로 쓰였었지요.

어매가 살림살이를 모두 버리고  돌아가시고 난 빈집에서 어매 생각하며 주워다 놓았지요. 

 

 

 

 

 

정남향 언덕 위의 집이였던 우리 집은 하루종일 햇볕이 들었지만

장독들은 미음자 집 뜰 안 추녀밑에 있었기에 해를 볼 수 없었지요.

그러나 된장은 늘 그렇게 맛있었으니 왠일인지 모르겠네요.

손수 농사지은 콩에다가 전 해에 사놓은 소금으로 간을 하여 담은 된장이라 그 맛이 좋았는지

아니면 따로 단백질을 섭취할 겨를이 없었던 자식들을 위해 정성으로 된장을 담아서인지 모르겠네요.

 

'어매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이런 소박하지만 볕 잘 드는 작은 장독대 하나쯤 가지고 싶어하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요즈음 시골장터에서 어쩌다가 만나게 되는 이런 올망졸망한 단지나 독들을 보면 어매 생각은 더 많이 나지요.

여러층의 크고 작은 단지와 독들을 쓰시면서  좀 더 편하게 사시다 가셨더라면하는 아쉬움 때문이지요.

 

경제적으로도 좀 넉넉했더라면 여름에는 된장독으로 겨울이면 김치독으로 쓰던 사람 키보다 더 큰 독,

그 독 하나에 두 가지 일을 시키며 만족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독의 키가 얼마나 컸던지 나이 어린 우리들은 짠지(김치) 꺼내 가지고 오라면 머리를 독에 처박아야 꺼낼 수 있었으니까요.

어매는 그 단지들을 씻고 드다루는 일로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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