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모곡

어매가 그리운 날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12. 8. 20:55

 

시어머님의 백내장 수술을 했다.

어제 수술을 했는데 오늘 의사선생님이 진료를 하신다고 안대를 풀었더니

젊었을 적 보다 더 환하게 잘 보이신다고 즐거워하신다.

어머님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노년에 눈이 잘 안보인다고 하시던 친정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전에 찍어놓았던 사진을 올려본다.

 

어매는 90까지 사시다가 6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소위 말한 천수를 다하시고 가셨는데도

그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어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찾아 촌동네를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회갑에 딸들이 선물한 금반지나 금비녀가 유일한 어매의 보석이었다.

그 귀한 보석을 아무때나 쓸 수 없었다.

외출을 하거나 집안에 잔치가 있을  때에만 곱게 머리 빗어 금비녀를 찌르시던

어매의 거친 손마디가 그리울 때가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떨어진 가마니로 화장실 문을 대신하지는 않았으리라....

어매의 화장실은 언제나 정낭으로 각인되어 있다.

 

 

가을이면 언제나 겨울을 준비하였던 어머니

그중 시래기 말리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짚으로 엮어서 추녀끝에도 달고 ,앞마당 감나무 가지에도 걸쳐놓고,

이렇게 장작더미에도 널어 말리고,

 

 

어매가 새참을 이고 오는 모습이 보이면 일꾼들은 손놀림이 더 빨라졌고,

가을은 그렇게 풍성하게 영글어 갔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끼고 또 아꼈던 그 절약하던 모습부터 생각난다.

작은 항아리 하나라도 깨어지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땜질을 하여 마른 곡식이나 소금을 담아두는 건 항아리로 쓰셨다.

         

요즈음 흔하고 흔한 빈 유리병도 어매는 늘 재활용 후에

또 재활용하셨지.

참기름을 담았던 유리병을 깨끗이 씻어 놓았다가 장날이면 다시 기름을 짜러 가실 때 가지고 가셨지.

 

 

토담집 부엌 한 쪽에 자리잡은 작은 항아리, 고추장 단지 일까?

빠쁜 일상속에서도 무명으로 만든 장빼(천으로 만든 항아리 덮개)를 꼭 만들어 덮어두시던

어머님의 정성스럽게 살림 돌보시던 모습도 세월과 함께 퇴색되어 간다.

 

 

부엌 부뚜막의 제일 바깥쪽에 있던 물독.

그 물독을 채우는 일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들의 몫이었었지

그 일을 하는 것을 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 힘들게 일하시던 부모님 생각해서.

그일을 하던 그 시절엔 원망스럽던 물독과 똬리가 이제는 자꾸만 그리워진다.

 

 

       들일에 길쌈에 여러 남매의 아이들 보살피랴

눈코 뜰새없이 바쁜 와중에도 어매의 부엌은 언제나 정갈했었다.

 

 

문고리에 매단 헌 저고리 고름은

 어두운 밤에도 불 없이 문을 여는 어매의 길잡이 노릇도...

높은 문지방을 내려 설 때, 힘 부치던 어매의 지주 노릇도...

 

 

"나이 80이 나도 여자는 여자 " 라는 말에 어울리게

노년에도 어매의 방 한쪽에는 언제나 참빗과 얼레빗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탁기도 없던 시절 양지바른 처마밑에 메어놓은 빨래줄과 소죽 끓이던 가마솥은

  추운 겨울날 우리들의 옷이나 양말들을 빨리 말려주는 건조기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허리가 굽지 않았을 때

 어매는 명주도 짜고, 무명도 짜고, 삼베도 짰다.

그땐 어린 우리도 어매따라 무릎이 따갑도록 삼 삼기 놀이를 했다.

 

 

 노년에 관절염으로 고통받던 어매는 무릎에 열난다고 만져보라고 만져보라고 했지만

젊은 나는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속으로 말했었다.

"노인되면 다리 아프기 예사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귀찮아했었다.

그러나 이제 나도 무릎에 열이 나본적이 있고서야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구나!

 

 

구남매를 키워 시집 장가를 보낸 어매는 어느 하루 자식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늘 자식의 안녕을 위한 기도로 평생을 사셨으리라.

 

그런 어매의 모든 기원은 정화수 한 그릇에서 출발했다.

정월이 오면 이른 새벽 동네의 다른 집에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살그머니 나무 대문 열고

마을 뒤 공동우물에 가서 남 먼저 기른 물을 떠다가 개다리 소반에 올려놓고

     정성껏 기도 하시던 어머니. 그 어매의 정성을 바쁘지도 않은 나는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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