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모곡

기다림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9. 9. 13:50



 젊어서 들일하랴 길쌈하랴 우리 구남매 키우랴,

마음 편하게 관광버스 타고 놀러 한 번 다니지 못하던 어매는

구남매 모두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제 놀러도 다니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벌써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이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 구남매 낳고 어디 몸조리 한 번 편안하게 했을까?

산후조리 후유증 때문인 듯 어매는 오십을 넘기면서부터 항상 발이시렵다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면 언제나 아랫목에 묻어둔 콩자루에 발을 넣고 주무시곤했는데

그렇게 발이 시리다고 하면서 약 한번 지어드시지 못하고

병을 키운게 노년에는 관절염이 되고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 걸을 수 가 없으니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어

자식들 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셨다.

차라도 얻어타고 어디 바깥 바람이라도 쐬러가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두번 시간나는대로 들리고

 일년에 서너차례 모시고 바같 구경 시켜드리는게 고작이었으니

집에서 자식들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어매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며느리보다 만만한 딸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요새는 아아들이 아무도 안오는데 니는 언제 올라노?" 라고 묻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어 내가 그렇다는 말은 못하고

"어매, 내한테는 괜찮지만 다른 자식들한테는 이런 전화하지말게.

자식들이 지맘대로 올때까지 쫌 기다리게."

라고 말해보지만 기다리는 어매는 일각이 여삼추라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전화를 하신다.


이렇게 닳아 반질반질 윤이나는 문지방을 보면 엉덩이로 밀치며 다니던 어매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 한 여름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면 발 시려운 나이 되니

어매의 그 따뜻한 콩자루 절로 생각나고

그 때 좀더 자주 모시고 놀러 다닐껄 하고 후회하지만

어매는 이 세상에 안계시고  . . . .


  

방안에서는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마당 끝에 있는 마굿간채에 못쓰는 의자 하나 기대어 놓고 우릴 기다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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