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아지매의 서울 구경

의사의 깊고 넓은 나라사랑에 가슴 뭉클했던 '안중근의사기념관'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12. 07:40

 

지난 화요일 오후 서울역에 환전을 하러 갔다가 회현역으로 가는 길

가까운 곳에 볼거리가 없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다보니 눈에 크게 들어오는 오는 이정표가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이런 곳도 있구나 싶어 더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덕길을 올랐다.

 

등줄기에 땀 줄줄  흘리며 오른 남산자락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이제까지 수박 겉 핥기로 알고 있던  그분의 흔적이 너무도 깊고 넓어 가슴 뭉클한 날이었다.

 

 

 

 

20 여분을 걸어 올라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앞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돌로 된 비들이 즐비하다.

안중근의사 광장이다.

광장에는  안의사의 인품,기개,사상을 느낄 수 있는 동상과 어록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등의 주옥같은 의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기념관으로 향한다.

 

 

 

 

의사가 순국하기 직전 한복을 입은 모습이 눈에 선한 나는 막연하게 기념관 건물은 한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현대식 건물일 줄이야.

1970년 10월 26일에 개관한 건물이 낡고 오래되어 2010년 10월 26일에 신축개관한 건물이다.

기념관 앞의 한얼( 큰 혼이라는 뜻으로, '우주' 나 '신’을 이르는 말)이라는 작품이 의사의 고귀한 희생을 숭모한다.

 

 

숭모의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게 하기 위함일까  길게 걷고 건물을 돌아 뒤쪽에 입구가 있다.

 

 

 

입구를 찾아 가는 길에도 의사의 주옥같은 어록들이 새겨져있다.

한 번 더 그분을 생각하라는 뜻일 것 같다.

 

 

 

드디어 들어간 중앙홀에는 의사가 단지로 쓴 혈서 '대한독립' 네 글자가 새겨진 태극기 앞에 사형될 때 입었던 복장 그대로의 대형좌상이 있다.

이곳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참배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잠깐 목례로 참배를 하고 올려다본 의사의 표정은 의연한데 배경인 태극기와 분위기는 섬뜩하리만치 경건해지게 한다.

이런 공간에 있어보지 않으면 그 기분을 알 수가 없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894년 16세에 결혼하여 2남 1녀를 둔 지아비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안 의사,

나라의 독립을 위해 타국을 떠돌던 것도 모자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

이듬해 3월 26일 사형되는 짧은 생애에서도 오직 나라만을 생각했던 대한의 영웅을 이곳에서 다시 추모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하다.

 

 

 

 

단지동맹 때 안 의사가 동의단지회 동지들의 선혈을 모아 태극기에 쓴 혈서.

 안 의사가 중국 흑룡강성이나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국내 진공작정이 승패를 거듭했다.

또한 친일단체인 일진회 일당들에게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런 시기인 1909년 2월 7일 러시아 엔치아 부근 카리 마을에서 11명의 동지와 단지동맹을 맺고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랐다.

이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자를 쓰고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로 하늘과 땅에 맹세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내부 촬영은 여기까지이다

누구 따라다니며 제재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촬영하지 말라는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는 것이 의사의 나라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한다는 생각에서다 .

 

 

 

 

 

 

"천국에 가서도 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며 형장의 이슬이 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제3전시실, 제4전시실, 기획전시실, 체험전시실 등 6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있다. 

 

각 전시실 별 전시물들을 보면

제1전시실 의사의 사진, 부조, 전언 등을 통해 민족의 등불 안중근, 안중근의사와 시대적 배경, 안중근의사의 출생과 가문의 독립운동 등을 볼 수 있다.

                 진해현감을 지낸 할아버지와 훌륭한 인품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의를 참지 못하고 활쏘기 등 무술을 좋아했던 성격이나

                 의사의 '대한민국장' 등 11개의 훈장을 받은 가계도도 이곳에서 볼 수가 있다.

제2전시실 : 의사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의 천주교와 국내활동, 해외활동과 의병투쟁, 동의단지회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단지한 손가락 마디 모형과 그 너머로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한  모습은 모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제3전시실 : 하얼빈 의거, 안중근 의사의 법정투쟁, 옥중에서 남긴 글, 안중근  의사의 순국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하얼빈 의거를 위한 계획과 현장도 등을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옥중에서 남긴 자서전 <안응칠역사>, <동양평화론>, 가족에게 보낸 편지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심문을 받던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죄악 15개조는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개조

1. 명성왕후를 시해한 죄

2. 고종 황제를 폐위한 죄

3.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정치를 한 죄

6. 철도, 광산, 산림, 농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9.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구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끓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침략으로 동야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기획전시실 : 의사의 주옥같은 유묵전시장이다.

                1910년 2월과 3월 뤼순감옥에서 쓴 옥중유필은 약 200여 점에 달하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 산재해 있다.

                그 중 안중의 의사의 것으로 밝혀진 것은 57 점이며 이 중 26 점이 국가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체험전시실 : 삼흥학교 졸업하기 퀴즈체험, 단지동맹 혈서엽서 만들기, 안중근 의사께 편지 쓰기, 유묵 스템프 찍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3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지도 어느덧 100년이 넘었다.

마지막 유서에서 말했던 그의 말소리는 귓가에 쟁쟁한데 말이다.

 

"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 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남겨진 유서)

 

그분의 기원대로 독립이 된지도 반 세기도 훨씬 지났지만 우린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고 있는가? 

크게는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물어보며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참배한다.

 

 

이곳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모든 걸 볼 수 있습니다.

http://ahnjunggeu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