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행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기형도 시인학교 시 콘서트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16. 06:50

며칠째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 창 밖에 내리는 푸른 빗줄기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시인이 되기도 하지요.

저는 그런 시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

비 내리는 지난 12일 금요일 저녁 7시에

광명문화원 하안문화의 집에서 열린

기형도 시인학교가 들려주는 시와 노래가 있는 시 콘서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다녀왔습니다.

 

 

 

광명이 낳은 위대한 시인 기형도,

요절해서 슬픈 시인 기형도,

그의 시가 쓸쓸하고 음울해서 또 슬픈 기형도 시인을 기리는

'기형도 시인학교' 시 콘서트가 열리는 날은

하안문화의 집 밖에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하안문화의 집에 개설된 '기형도 시인학교'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있는 광명문화원  

하안문화의 집에서 기형도를 기리며 

기획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광명시가 배출한 기형도 시인의 추억을 음미하고,

나의 추억을 시로 다듬는 시간’을

주제로 2009년 개설된 시인학교는

매년 봄 학기, 가을 학기로 나누어 진행된다.

매 학기 15주 교육을 하는 시인학교는

이제까지 200여명의 교육생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광명시민들의 기형도 시인과 시작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빈 집' 을

유형진 시인의 목소리로 여름 밤을 수놓는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로 시작하는 '빈 집'

유형진 시인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으니

그 적막하고 쓸쓸함이 덜해지는 것 같아

마음 가볍게 콘서트 속으로 빠져든다.

 

 

 

 

이어 기형도 시인을 좋아해

멀리 거제에서 한 숨에 달려왔다는 

이제니( 1972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페루〉가 당선되었다.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가 있다.)시인의

 '빈 집'  시노래가 있었다.

 

이제니 시인이 시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시노래도 수준급이다.

이별 후 쓸쓸하고, 적막하고,

무력한 마음을 다시 빈집에 가두며

소통을 포기하는 뜻을 지닌 시를 노래하는 이제니 시인,

 원작의 감성과 적절한 동화에 함께한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다음은 기형도 시인학교를 수료한 사람들의

창작시 낭송이 있었다.

일곱 분의 마음을 표현한 시를 들으니 

'시란 바로 그 사람' 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 못잖은 실력을 뽐내는 수료생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작게 떨려서 더 아름다운 밤이 된다.

 

 

 

 

서예를 좋아하는 이연상씨는  '묵향'이란 시로

진솔해 보이는 인상의 신상호씨는 '약속' 이라는 시로

각자의 인상을 대변한다.

 

 

 

 

다시 시노래를 하는 이제니 시인.

그녀의 시 '곱사등이의 둥근뼈'를 부를 때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길 바라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에 에너지를 주기위해서 지었다."

는 작시 배경에 어울리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라 듣기 좋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에 더해 아름다운 노래가 있는 

<기형도 시인학교> 시 콘서트를  하는

하안문화의 집 이층은 밤도  분위기도 점점 깊어만 간다,

 

 

 

 

노래로 익어가는 밤을 더 무르익게 하는

여덟 명의 수강생들이 낭송하는 창작시에서는

각자의 삶이 보인다.  

절 담장에 핀 목단에 어머니를 투영한 윤외숙씨의 시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머니란 단어에도 울컥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밥을 자식 뱃속에 가득 채워주시던

하늘 나라에 계신 어머니니 오죽하겠습니까?

 

 

 

 

 

사람과 시는 닮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그녀의 시는

절제미가 있고 시인의 자태만큼 아름다웠다.

'나도 저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언 듯 들었다.

 

 

 

 

낭랑한 시 낭송에 깊게 빠졌다 싶으면 다시 노래가 들려오네요.

 초대가수는 노래하는 농부 김백근 씨이다.

 

 

 

 

그의 하모니카와 기타를 넘나드는

악기연주와 노래솜씨에

관객들은 비 내리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먹거리가 발라야 먹는 사람도 바르고,

먹는 사람이 바르면 세상이 발라진다.

는 본인의 생각을 노래한 '농부의 마음'에 

콘서트장은 큰 박수와 환호로 채워진다.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엄마걱정>

최평자씨의 낭송으로 듣는 맛은 또 다르다네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살림에

가족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혼자 남은 시인이

그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시다.

이런 우울한 유년기가 기형도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마지막 무대는 '기형도 시인학교'

출신들이 모여 만든 노래모임 '시락'

시노래 <엄마 걱정><입춘> 이다.

그녀들도 시인의 감성에 젖어서일까 표정들이 시를 닮았다.

어린 시절 빈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말이다.

 

그렇게 시 콘서트는 쓸쓸하게 막을 내린다.

다음 가을 학기를 기약하면서.....

 

 

 

 

 

 7월의 비 내리는 밤에 함께한 '기형도 시인학교' 시 콘서트,

낭랑하게 읽어 주는 시가 있고,

아름다운 노래가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던 밤.

이런 밤이 있기에 요절한 기형도 시인은 

하늘에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