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고드름을 보면

렌즈로 보는 세상 2015. 1. 30. 07:00

 

 

 

 

 


 

 

안동에 살 때 우리 뒷집은 목욕탕이었습니다.

목욕탕 실내의 뜨거운 김은 환풍기를 통해서 밖으로 빼내었지요.

그런데 창문의 작은 틈새로 빠져나오는

수증기도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물방울은 날씨가 따뜻할 때는 아래로 떨어져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이렇게 날씨가 추울 때는 고드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고드름의 길이를 보고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고 외출을 할 때

옷을 입는 것을 참고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고드름이 많이도 달려있던

어릴 적 우리 집 초가 추녀 끝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었습니다.




 

 

그러나 전원생활을 하는 요즈음은

집을 나서면 고드름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라

고드름을 보면서 자주 추억에 젖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그 때의 산골 집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초가집이었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거두어들인 곡식의 바심이 끝나고

겨울 볕 따스한 날에

아버지는 어매가 풀 먹여 다듬이질 해서 만들어준

하얀 무명 솜 바지저고리를 입고 열심히 이엉을 엮으셨다.

그 이엉들 중에서 지붕을 이을 때

마지막 마무리를 할 용마루 부분을 엮어나갈 때의

그 펼쳐진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철없던 우리는 아버지께서 서리서리 엮어가는 이엉 사이로

숨바꼭질 하듯 뛰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그 때 그것이 행복이란 것도 모르며 노는 것에 열중했지요.

 

 

 

 

 

 

 

 

그렇게 이엉을 엮어 헌 지붕을 벗겨내고

새 지붕으로 갈아놓으면 초가집은 한결 태가 났습니다.

그 태가 나는 지붕에 겨울이 오고

지붕 가득하게 내려앉은 눈들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흘러내릴 때

갑자기 기온이라도 뚝 떨어지는 날이면

추녀 끝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었지요.

눈이 와서 썰매도 타러가지 못하던 우리는

그 고드름을 꺾어 칼싸움도 하고,

아이스크림처럼 오도독 오도독 깨물어 먹기도 하며 놀았습니다.

그 때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던

그 영롱한 고드름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때 아버지는 고드름이 길게 달린 모습을 보면서

"고드름이 길게 달린 걸 보니 올해도 풍년이 들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도 고드름이 길게 달린 날이 많았으니

아버지 말씀대로 풍년이 들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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