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오래된 정미소를 만나 추억에 젖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7. 23. 05:59

 

 

 

어제 오후에 어슬렁 어슬렁 다녀온 이웃에 있는 대신면 율촌2리에서

어릴 적 부의 상징이던 정미소를 만나고 추억에 젖었다.

얼핏 보기에도 오십 년은 훨씬 넘은 것 같은 정미소,

율촌2리 새마을정미소는

예전의 명성은 찾아볼 수 없이 이젠 문을 닫았지만

누더기처럼 이어 만든 양철 벽과 지붕은

어느 유명한 작가가 만든 조각품처럼 아름답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 슬하 9남매 중 여섯 번째이고

딸로는 넷째 딸로 자란

나의 고향은 첩첩산골이다.

 

 

 

 

 

 

그런 산골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들이라

어릴 적 쌀을 가루로 내는 것은 물론

주식인 쌀이나 보리도 디딜방아를 찧어 알곡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았으니 10리길 걸어서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나는 언니를 거들어 디딜방아의 한 쪽 다리를 밟아 방아를 찧었다.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은 일은 어매가 호박(확) 앞에 앉아 곡식을 쓸어 넣고

어느 정도 찧어지면 키질로 껍질을 날려 보내고 다시 찧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일반 놀이반인 재미로 하는 일이지만

힘 들여 방앗고를 들어 올려야 쌀이나 보리를 찧던 언니는 늘 땀을 뻘뻘 흘렸었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박자를 놓쳐 더 힘들어지니

언니는 박자를 딱딱 맞춰서 방앗다리를 디뎠고 나는 늘 그 박자를 따라가기가 바빴다.

 

 

 

 

 

어떤 때는 우리가 제대로 박자를 못 맞추면 호박(확)에 곡식을 쓸어넣던 어매는

"손 찧는다. 정신 차려라"

라고 호통을 치고는 했었다.

 

 

 

 

그렇게 디딜방아에 대한 추억을 안고 

10리길 걸어서 간 초등학교가 있는 면소제지에는

거대한 방앗간 정미소가 있었다. 

초가집 아래채 처마 밑의 디딜방아만 보던 눈에

그 정미소는 얼마나 신기했던지.....

 

 

 

 

 

우리가 하루 종일 힘겹게 디딜방아로 찧어내던 쌀이

기계를 따라 집에서 찧은 쌀보다 더 하얀 색깔을 띠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그래서일까

면소재지의 정미소는 술도가(양조장), 과수원을 하는 집과 함께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잣집이었다.

 

 

 

 

 

그렇게 부의 상징이던 정미소가 우리 마을에 들어온 것은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다.

그 때부터 우리는 곡식을 알곡으로 만드는 일로는 디딜방아를 디딜 일이 없어졌다.

다만 제삿날 떡을 만들 때 쓸 쌀가루나

양념으로 쓰던 고추가루를 빻는 일에만 디딜방아를 디뎠다.

그렇게 가루를 내는 일만 하던 디딜방아도

동네 정미소에 가루를 빻은 기계가 들어오면서 하던 일을 멈추었다.

 

 

 

 

 

 

동민들의 손과 발이 되었던  정미소가 수십 년 동안 전성기를 누리는가 싶더니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곡식을 수매를 하고부터다.

 때문에 동네 정미소를 이용할 일은 적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수매를 하고 남은 곡식은 집집마다 정미기를 설치하고 찧는다.

그러다보니 정미소를 이용할 일은 거의 없어지고

동네 정미소는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런 세월을 견뎌 온 정미소가 지금 이 정미소의 모습이다.

녹 슨 벽과 지붕을 훈장처럼 달고 묵묵히 동네 입구를 지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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