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논 매는 날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6. 20. 08:07

 

 

바람도 살랑거리고  구름도 두둥실 떠다니니

집에 그냥 있을 수 없어 할 일 없이 차를 몰고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렸다.

설렁거리면서 다니다가 보니 논에서 일하시는 어른이 눈에 들어오고

어린시절 이맘 때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논 매기(벼 논에 김매기)가 생각났다

 

 

 

 

 들판의 감자와 강낭콩이 푸른빛을 더하고

밭두렁에 심어놓은 물외(오이)나 고추에 지줏대를 세워주고 나면

모내기한  나락(벼)은 제법 키가 자랐다.

나락만큼은 아니지만 잡풀도 많이 자랐다.

 제초제나 기계가 없던 시절, 손으로 그 풀들을 뽑아주니

그  일이 논 매기이다.

 

논 매기 철이 오면

이웃들과 품앗이로 돌아가며 김을 맨다.

 날이 정해지면 어매와 아부지는

지난해 아껴 갈무리해 두었던 콩이나 쌀 등의 곡식을  이고 지고 장을 가서

간잽이 고등어 두어 손과 노가리 한 떼와 소고기를 사오셨다.

 

논 메기 일꾼들이 많게는 열댓 명 적게는 일여덟이 되니 

그날은 새참과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안식구들도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

언니와 어매는 밭둑에 제법자란 머구(머윗대)를 전날 베어 삶아

들기름에 볶은 나물과  

논 맬 때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이젠 너무 자라 약간은 질긴  미나리를 삶았다.

거기에  초봄에 심어 키운 배추의 줄기를 끓는 물에 데친 배추나물,

 봄에 산에서 꺽어다 말린 고사리 나물을 더했다.

그리고 지난 장날 사온 노가리 무침과 갖은 양념하여 찐 고등어에

일 년에 몇 번 먹지 못하는  쌀밥과 소고기 국까지 더하면

임금님 수라상이 그보다 더 진수성찬이었을까?

 

그렇게 갖가지 반찬을 노란 알루미늄 찬합에 담고

밥을 담은 다라이에 국 냄비,

스텐 국그릇과 밥그릇까지 챙겨야하니

어매와 언니가 이고 가는 대광주리는 언제나 수북했다.

무거운 광주리를  손으로  잡아야 하는 언니와 어매는

다른 짐을 들 수도 없다.

그래서  물주전자는 언제나 어린 나의 몫이었다.

그렇찮아도 맛있는 반찬을 탈탈 긁어 다 가지고 가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잘됐다 싶어하며  물 주전자를 들고 따라가보지만

작은 산을 넘어야 있던 우리 논은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멀던지...

그래도 그 힘든 게 어찌 쌀밥과 산해진미가 부럽잖은 맛있는 반찬에 비하랴!

나는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들고 다녔다.

 

그렇게 새참과 점심을 배달하고 나면  늬엿늬엿 해는 저물고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엉머구리 떼가 합창을 할 즈음에

일꾼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일꾼들은 그냥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일꾼은 소를 타고 오고(수고했다는 보답으로 아부지가 애지중지 하던 소를 내어준 거다.).

같이 일했던 일꾼들은 풍물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산을 넘어온다.

멀리 산 꼭대기에서 풍물소리가 들려오면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던 우리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다.

집으로 돌아온 일꾼들은

한바탕 농악놀이로 흥겹게 놀고 난 후 저녁과 술상을 받았다.

 

 

 

 

 

 

이제는 논 매는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무논에 바짓가랑이 둥둥 걷고 들어가는 것은

기계로 심은 모내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아

다시 심을 때나 농약을 뿌릴 때 뿐이다 

 

논 매는 날 저녁,

어둑한 남포불 밝힌 마당에서 유난히 지게작대기 춤을 잘 추던

영구아재도 이제 칠순을 넘긴 노인이 되었고,

너무 어려 그 흥겨운 마당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던 우리도

벌써 환갑을 바라본다 .

 

그날의 풍경은 어제 일같이 눈 앞에 그려지는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벌써 5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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