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참꽃(진달래)을 보면.....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4. 16. 06:51


 

 

만산이 참꽃으로 물든 요즈음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흐드러지게 핀 참꽃을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나 바라보는 눈자락이 살짝 뜨거워오곤 한다.

 

 

 

 

 

어릴 적 산골마을에서 자라 다니게 된 초등학교는 10리(4km)나 떨어진 학교라

새벽같이 일어나 조밥이나 보리밥으로 배를 채우고

산 넘고 개울 건너 학교에 가면 언제 밥을 먹었나 싶게 배는 홀쪽하게 꺼져있었다.

 

 

 

 

 

 

그런 배를 하고 네 시간 수업을 하다 보면

글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고 꼬르륵 소리만 크게 들리고,

나중에는 뱃가죽이 등에 가서  붙어버리는 것 같은 허기를 느낀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가지고 맞이한 점심시간은

꿀꿀이 죽이라 부르던 강냉이 죽 한 그릇이나

옥수수빵 한 덩이가 전부였으니,

한 참 자랄 나이에 먹은 둥 만 둥한 점심이었다.

 

 

 

 

 

그렇게 먹은 둥 만 둥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두 시간의 수업을 하고 나면

배는 다시 실풋하게 꺼져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학교 앞 점방에 보이는 눈깔사탕이나

센베이같은 과자에 자꾸 눈이 간다.

 

 

 

 

 

 

그러나 선뜻 사먹을 수는 없다.

용돈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오감해하던 때라

점방의 주전부리들은 늘 눈요기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안고

다시 십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돌아왔다.

산이나 들에서 나는 새싹이나 열매 등 

눈이 가고 손이 닿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주전부리였지만

그 중에서도 보리가 피기 전인 이런 봄날의 먹거리로는

참꽃이 가장 손 쉽게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였다. 

 

 

 

 

 

 

 

천으로 만든 책보자기를 허리에 묶어 맨 여자애들이나

 어깨에 맨  남자애들은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멀리서도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참꽃을 한눈에 알아보고 우르르 뛰어간다.

 

 

 

 

 

 

가시덩쿨이 걸리던, 낙엽에 미끄러지던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가 만난

무리지어 활짝 핀 참꽃은 얼마나 반갑던지,

정신 없이 뚝뚝 한 주먹씩 따서 입으로 넣어서는

대강 씹어서 목이 터져라 넘기고는 다시 따먹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손과 입술은 파랗게 꽃물이 들고,

배가  불러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파란 혓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쳐다보고 깔깔거리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찮아도 버짐 난 까칠한 얼굴이 봄햇살에 그을러 까무잡잡한데 

손 한 번 씻지 않고 산과 들을 뛰어다녔으니

얼굴이나 손은 말할 필요도 없이 꾀죄죄한데

거기에 더해 참꽃 물까지 들었으니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올법도 하다.

 

 

 

 

 

 

그렇게 깔깔거리며 풀밭을 뒹굴다가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꽃술을 따서 꽃술 부러뜨리기로 참꽃 따먹기를 했다.

참꽃 중에서 튼실한 암술을 구해서 서로 십자로 걸어 부러뜨리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따 놓은 참꽃을 가져가는 놀이이다.

저 가녀린 꽃술로 내기를 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그림같다.

 

 

 

 

 

그렇게 우린 허기진 배를 참꽃으로 채우면서  기나긴 봄날을 보냈는데

지금 아이들은 참꽃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우리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어른들도 음식이 지천인 세상에 살빼기 걱정을 해야하니

참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는 차로나 사랑받는 요즈음이다.

그런 세상을 살면서도 나는 참꽃만 보면

늘 허기진 그 때가 그리워 눈자락이 뜨거워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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