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검정 고무신 신던 시절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1. 17. 08:52


 

 

 요즈음 등하교 시간이면 학교 주변 도로가 무척 혼잡한 것을 볼 수있는데,

그것은 부모들의 자기 자식 자가용 등,하교 시키기 경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런 광경을 보노라면 국민학교 시절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검정 고무신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하교 길이 생각나곤 한다. 

 

 

 

 

 내가 살던 고향 집은 학교에서 십리나 떨어진 산골 동네다.

학교에서 신작로를 따라 절반쯤을 걸어와서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걸어
나지막한 산을 넘고 다시 좁은 들길을 걸어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길이 비록 멀긴 해도 한 시간 정도 걸리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노느라,

쉬느라, 진달래도 따먹고, 올미도 주워먹고,

남의 집 밭둑의 감홍시도 주워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두, 세 시간이 걸려 산 그늘이 길게 마을을 덮은 뒤에야 도착 하곤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바로 우리가 큰길이나 신작로라

불렀던 미루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웠던 비포장 도로가 있었는데 
날이 풀리고 꽃 피는 봄도 지나 여름으로 들어서서 양말을 신지 않는 철이면

우린 그 길을 걸을 때면 곧장 신발을 벗어 들고 걸었다.

 

 

 

 

 

 

왜냐하면 잦은 비로 인하여 비포장 도로의 차바퀴가 굴러간 자리는

마치 요즈음의 아스팔트 길처럼 표면이 매끄러워서

발바닥이 아프다거나 상처 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우리들 마음 속에는 들일 하시는 부모님들께서

거의 맨발로 일하시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 힘드시는 것을 알아 뭔가를 아껴야 되겠는데

다른 것은 아낄 것이 없고

검정 고무신이라도 덜 닳게 해야겠다는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요즈음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운동삼아는 걷지만 걸어다녀야 될 환경이라서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은 비록 검정고무신을 들고 다녔지만
행복했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조금만 멀리 갈 일이 있으면

자가용을 타고 다녔던 내 아이들은

신발을 들고 다녔던 그때의 내가 행복했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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