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우리들의 겨울 밤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1. 21. 08:26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외가집이나 할머니댁에 가면
어른들만 사시 던 집에 모처럼 아이들이 왔으니
사람이 그립던 노인들,

늘 하시던 놀이인 화투치기에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아이들은 집에서는 하지 않던 놀이를 하니 신기해서

즐겁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화투치기를 했다.

그 때만해도 젊었던 '나는 저런 불량한 놀이를 한다.'

 싶어 기겁을 하며 말리곤 했지만

나의 어린시절 겨울방학 동안 기나긴 밤의 절반은

화투치기를 하며 보냈으니..... 

 

 

 

 


 산골동네라 유난히 길고도 추웠던 초등하교 시절 겨울방학,

오후 여섯 시부터 시작되는 밤은 잠이 많던 나에게도 얼마나 길던지.....
지금같이 텔레비젼을 볼 수도 없었고

특별히 재미난 놀거리도 없었던 그 시절,

나는 저녁만 먹으면 같은 학년인 친구 인숙이네 집으로 갔다.

가로등도 없던 골목길을 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무서움을 감내하면서도 매일 밤 갔던 이유는

인숙이네 식구들과 했던 화투치기의 달콤한 유혹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며 인숙이네 집에 도착하면

인숙이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둘 이렇게 넷이서 화투치기를 하였는데,

인숙이 할머니나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얼마나 재미있게 놀아주시는지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의 그 무서움,

 꼭 귀신이 뒤를 따라올 것 같은 그 무서움을

저녁밥만 먹고 나면 잊어버리고 인숙이네 집으로 가곤했다.

 

 

 

 

 

 

 

 

그렇게 놀다 배가 고프겠다 싶으면 그분들은 겨울밤의 간식거리인

언 홍시나 밤 아니면 강낭튀밥을(옥수수 뻥튀기) 주시거나
마땅한 먹을 것이 없다 싶으면 식은 밥에 언 김치라도 먹여서 보내주셨다.

 

 

 

 

 

 

어린 것들이 화투나 친다고 한 번도 야단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던 어르신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분들은 돌아가시거나 치매로

우리 어릴 적을 기억도 하지 못하지만

사랑 받으며 화투치기를 했던 나에게는 이렇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흐리게 한 나는

못된 에미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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