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보릿고개-황금찬

렌즈로 보는 세상 2017. 5. 24. 07:00



단발머리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맘때쯤의 걸어오던 하굣길은 늘 허기졌습니다.

옥수수 죽이나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빈 입으로 십리 길을 걸어왔으니까요.

하얀 칼라를 한 여학생이 되어 읍내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지요.

그러나 여학교를 다닌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지요.

읍내 자취방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을로 들어서는 고갯길에서 바라보는 이맘때의 풍경은 일렁이는 보리밭이었습니다.

고향에 왔다는 편안함과 이제 보리를 추수하면

좀 더 나은 생활이 되겠다는 기대감에 보리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지요.

이제 그런 배 고품은 없어지고

먹을 것이 지천인 세상이다 보니 늘 비만을 걱정해야하는 시절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렁이는 보리밭은 내 마음에 짠한 풍요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정자초교사거리에 조성된 보리밭을 보며-










보릿고개

황금찬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블랑은 유럽,

와스카란은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 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