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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담쟁이덩굴처럼 살 수 없을까?

렌즈로 보는 세상 2018. 2. 19. 07:00



     우리도 담쟁이덩굴처럼 살 수 없을까?
                                                       
사진을 하는 나는 자연의 모습을 담는 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이른 봄 새싹이 돋을 때의

담쟁이덩굴을 담는 걸 좋아한다.

담쟁이덩굴은 이리저리 얼기설기 엉겨 자라지만 남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새순을 틔운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좋다.

얼마 전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서로 부둥켜안고 싹을 틔우는

담쟁이덩굴을 닮을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전쟁으로 인한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된 소년들의

무인도 생존기를 다룬 우화적 소설이다.

‘파리대왕’은 1954년에 출판되었고

이때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후였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골딩’은 전쟁으로 인해

인간들이 일군 문명들이 파괴되고,

극한 상황일 때 인간의 야만성을 목격했을 것이다. 

‘골딩’은 그런 시대상황을 ‘파리대왕’을 통해서 보여주며

우리 인간의 야만성과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전쟁으로 인한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추락해 살아남은 소년들은

처음에는 각자의 역할을 정해 화합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두 개의 큰 축으로 되어있다.

봉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랠프와

멧돼지 사냥을 중시하는 잭이다.

잭이 사냥을 나가면서

책임졌던 봉화가 꺼진 사이 배가 지나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텍스트를 보면 랠프와 잭의 차이는 극명하다.

봉화를 중시하고 규율을 지키며,

소라를 불어 화합을 이루려는 랠프 일행은

이 섬에서 문명을 회복하고 구조되기를 위한 노력하는 반면,

사냥을  좋아하는 잭 일행은

멧돼지를 잡아먹으면서 변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피를 본 잭 일행은 점점 야만스러워 진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랠프 일행이 옳아 보이고

잭 일행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간다.

처음에는 잭이 무서워서 따랐던 소년들이

점차 고기를 먹고 싶어 잭에게 가면서

랠프 일행은 봉화를 올리는 일도 버거워진다.

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잭 일행은

멧돼지를 사냥해서 구워먹으며 파티를 벌인다. 그

들은 얼굴에 칠을 하고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는

함성을 지르고 춤을 추면서 점차 야만적으로 변해간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랠프 일행은 소심한 부정을 해보지만

내면의 본능적인 욕구는 부정하지 못한다.

심지어 문명을 대표한다는 랠프조차

자신 내면의 폭력적인 욕구를 부정하지 못한다.
‘갈색의 연약한 살점을 한 줌 손에 쥐고 싶었다.

상대를 눌러 해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였다.’
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의 야만성을 누르고

다시 과일을 따먹으며 봉화를 올리는 일에 열중하려고 한다.

점점 봉화를 통한 탈출은 비현실처럼 느껴지기에

눈앞에 쾌락을 주는 사냥은 힘을 얻어 간다. 

잭 일행이 불을 얻기 위해 돼지의 안경을 훔쳐간 행위에 대해

항의를 하러 간 랠프 일행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잭 일행이 떠민 돌덩이에 소심한 지식인의 모습을 한

총명하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돼지가 치어 즉사하고,

동시에 권위와 문명, 법과 질서, 규칙의 상징이자

랠프가 가진 권력의 기반이었던 소라마저 산산조각이 난다.

결국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해가는 잭 일행은

멧돼지 사냥만이 아니라

랠프 일행을 죽이려고 하는 인간사냥까지 하게 된다.

 폭력과 야만의 승리.

이는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성가대원이였지만 랠프와 함께했던 사이먼은

소년들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야만적인 폭력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바로 ‘파리대왕’을 만나게 되면서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파리대왕
파리대왕’은 작품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파리대왕’은 잭 일행이 사냥을 하고

산 정상에 있던 괴물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단지 꼬챙이에 꽂힌 암퇘지 머리에 불과하다.

 이를 먹기 위해 수많은 파리가 들러붙었고

이를 ‘파리대왕’이라고 사이먼은 생각한다. 그

리고 환상 속에서 ‘파리대왕’과 대화하는 것이다.
악의 대명사라고 하는 ‘파리대왕’ 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작은 ‘파리대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파리대왕’이 표출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우리 인간의 능력일 것이다.

윌리엄 골딩은 한 앙케이트에서

‘파리대왕’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사회의 형태는 개인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외관상 아무리 논리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정치체제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 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모랄이다.

마지막 구조되는 장면을 제외하고선

전편이 상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섬에서의

어린이들의 상징적 생활과 똑같은 악으로 얽혀있다.

장교는 사람사냥을 멈추게 한 후

어린이들을 순양함에 태워 섬에서 데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순양함은 이네 똑같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적을 사냥할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순양함은 누가 구조해 줄 것인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내가 한 생각을 골딩이 대변해주는 말이다.

인간 본성에 결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결함을 최소화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릴 적 교육이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결국 어릴 적의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인간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여성이다.

이제 잉태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길러내는 일은 있을 수도 있다.

내 손주들이나 워킹맘의 아이들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에 내가 그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사랑으로 보듬어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악한 감정을 누르고

선한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에 힘을 쏟을 것이다.
그래서 순양함을 타기 직전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과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 갔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로 표현되는 랠프의 슬픈 모습을

내가 키운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도록 키워야겠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살더라도 척박한 곳에서도

얼기설기 얽혀서 살아가지만

각자의 길을 존중해주는

담쟁이덩굴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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