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노고단을 넘기 전에 만난 천은사,
물안개 피는 천은지를 지나
꿈결같이 경내를 걸었다.
노고단 통행료(1인당 800원)라고
해서 낸 돈이
천은사 입장료인 모양이다.
그래서 돈 아까워 들린 천은사다.
그렇게 계획 없이 들린 곳이라
느긋하게 이곳저곳은 보지 못하고
전각들의 외모만 슬쩍 보고 왔다.
큰 사찰인 천은사는
15 개 정도의 전각들이 있었고
그 전각들은 우리 한옥의 멋을
제대로 풍기고 있었다.
특히 위에서 보는 지붕 선들이나
추녀너머로 보이는
다른 전각의 선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인 천은사는
828년(흥덕왕 3)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으며,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는 천은사는 오래 전에 갔을 때
거의 폐허가 된 절이다 싶어
이번 여행길에서는
제외되었던 절집이다.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경내와 전각들이
너무 깨끗하고 정비가 잘 되어있어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맑은 아침공기를 실컷 마시고 올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뒤쪽에 있는
관음전 앞마당에서 본
한옥의 지붕선과
각각의 전각에서 추녀너머로 바라보는
우리 한옥의 선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오래 전의 모습만 생각하고
들리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풍경이다.
'발길 닿는 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즐겁게 보고
힐링을 하고 오자'
는 이번 여행의 모토와 딱 어울리는 천은사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는 이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는
천은사에는 보물들도 많다.
바쁜 걸음에 그 보물들을
찬찬히 보지 못해 아쉽다.
운고루의 종을 치는 아름드리
당목(幢木 : 종을 치는 나무 막대)이
닳았다.
세워놓은 빗자루도 가지런하다.
앞으로도 저 몸들은
닳고 닳을 것이다.
오랜 세월 지나 더 닳은 모습을
또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은사가 재해를 입지 않고
지금의 모습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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