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이렇게 비가 날마다 내려주길
나는 밤마다 기도했다.
그 때는 어른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소에게 먹일 꼴을 벨 시간이 없어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를 몰고 산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여 소의 배를 채우게 했다.
우리 집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남여를 불문하고
그 일을 해야 했으니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너무 햇살이 강한 한낮에는 소가 더위를 먹는다고 집에서 놀다가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소를 몰고 옆구리엔 방학숙제 할 것을 끼고 산으로 가서,
일단 산등성이에 올라 산 전체를 둘러보고
나무가 많지 않고 풀이 우거지고
상석이 놓여있는 산소가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가
그곳에서 풀을 뜯어 먹이는데,
그래도 명색이 여자라고 다리에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소타래기(고삐)를 나무에 묶어놓고 있다가 온 날은
용케도 어른들이 알아내시고 게으름을 피웠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니 꿰를 부릴 틈이 없다.
다리가 풀쐐기에 쏘이거나 억새 잎사귀에 베이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소를 풀어놓고 먹여야 했다.
그렇게 소를 따라 다녀야했던 내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으니
비오는 날이 기다려질 수밖에....
(2009년 7월 20일 장계향선생 묘소 가는 길에 만난 풀을 뜯는 소들)
그래도 그런 날의 낭만이라면
상석 위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난 뒤
돌아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는데,
늘 나는 아름다운 초원에 하얀 집을 꿈꾸었다.
또 하나의 낭만이라면
이렇게 비가 내리고 난 후
맑은 하늘에 떠있던 구름을
나뭇가지와 꽃들과 매치시켜 바라보는 평화로움이였다.
2002 . 8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