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소 먹이기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32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이렇게 비가 날마다 내려주길

나는 밤마다 기도했다.

그 때는 어른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소에게 먹일 꼴을 벨 시간이 없어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를 몰고 산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여 소의 배를 채우게 했다.

 우리 집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남여를 불문하고

그 일을 해야 했으니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너무 햇살이 강한 한낮에는 소가 더위를 먹는다고 집에서 놀다가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소를 몰고 옆구리엔 방학숙제 할 것을 끼고 산으로 가서,

 일단 산등성이에 올라 산 전체를 둘러보고

나무가 많지 않고 풀이 우거지고

상석이 놓여있는 산소가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가

그곳에서 풀을 뜯어 먹이는데,

그래도 명색이 여자라고 다리에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소타래기(고삐)를 나무에 묶어놓고 있다가 온 날은

용케도 어른들이 알아내시고 게으름을 피웠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니 꿰를 부릴 틈이 없다.

다리가 풀쐐기에 쏘이거나 억새 잎사귀에 베이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소를 풀어놓고 먹여야 했다.

그렇게 소를 따라 다녀야했던 내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으니

비오는 날이 기다려질 수밖에.... 




(2009년 7월 20일 장계향선생 묘소 가는 길에 만난 풀을 뜯는 소들) 

그래도 그런 날의 낭만이라면

상석 위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난 뒤

돌아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는데,

늘 나는 아름다운 초원에 하얀 집을 꿈꾸었다.

  




 

또 하나의 낭만이라면

이렇게 비가 내리고 난 후

맑은 하늘에 떠있던 구름을

나뭇가지와 꽃들과 매치시켜 바라보는 평화로움이였다.


 

2002 . 8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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