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카메라를 들고 내가 살던 곳과 아주 많이 닮은 동네,
길이 끝나고 더 갈 곳이 없는 그런 동네를 갔었어.
정신 없이 바쁘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돌담 및 풀잎 위에 점점이 내려앉아 있는 감꽃을 발견하고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었어.
요즈음은 봄이 되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꽃이
화사하고 우아한 목련이 되었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봄이 되면 볼 수 있었던
꽃들은 야생화가 전부였었던 것 같애.
잔설이 아직 골짜기에 남아있을 때 오랑케 꽃과 제비꽃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개나리와 진달래,민들래가 피고 그 것들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지천을 그 향기로 가득채우는 아카시아 꽃과
해질무렵 그 하이얀 순결한 모습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어.
그렇게 꽃들이 피었다 지면서 단오가 되고 그 무렵에 감꽃이 피었어.
내가 감꽃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은
그 모습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놀거나 먹던 그런 기억이야.
우린 오월이 되어 감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것을 주우러 다니는데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재릅이라고 불렀던
삼(대마)대를 몇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그 종 같은 모양의 꽃을 거기에 끼워 넣어 집으로 가지고 와서 먹거나
동네 느티나무 밑에 삼삼오오 모여
그 것을 먹으면서 땅 따먹기를 하다가 그 것도 지겹고 재미없어지면
근처에 있는 풀잎 줄기를 꺽어 감꽃 목걸이를 만들곤 했어.
그렇게 감꽃은 꽃의 본분인 열매를 맺어놓고
또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으로 생명을 다 했었어.
그러나 먹을 것도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농촌에 아이들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지금
감꽃은 원래 자기가 맡은 직무만 충실히 하고
풀잎 위에 떨어져 어쩌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배시시 웃어주고 있었어.
2003 . 6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