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내려졌던 단발령에서 유래하였던 듯
내 어릴적 머리를 자르는 것을 단발이라고 하였는데,
그 머리 자르는 모습은
우리 막내가 자기와 닮은 사고를 가진 주인공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보았다는 영화 "집으로"에 잘 그려져있듯이 그 모습은 이러했다.
산골 작은 마을인 우리 동네에는
농사일을 겸하여서 머리 깍는 일도 하시는 아저씨가 하시는
이발소는 있어도 미용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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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자매들은 자라면서 제일 큰언니가 어느 정도 자라
가위질을 제대로 하게 되면 여동생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그렇게 바톤을 이어가면서 동생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던 터라 나도 그 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머리가 조금 길다 싶으면
셋 째 언니가 머리 자를 준비를 해서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면
나는 우리 집의 유일한 의자였던 다리가 약간은 길고
상판은 그때의 내 엉덩이에 딱 맞을 크기로 모양이 둥글던 나무의자(일명 틀의자)와
목에 둘러 상체를 감쌀 보자기와 옷핀을 준비해서 마당으로 나가면
언니는 그 의자에 나를 앉히고 머리를 깍기 시작한다.
뒤머리가 유별나게 목 아랫부분까지 나있던 나는
그 곳을 자를 때면 꼭 살을 자를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울기를 잘하였고,
그때마다 언니는 제비꼬리(그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고)가
나있기 때문에 그걸 자르느라 언니가 힘 드는데 울기까지 한다고
꿀밤을 줘가면서 머리를 자르곤 하였으니
내 머리 자르는 것은 언제나 전쟁을 치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듯 하던 단발도 중학교에 들어가고 미용실에
가게 되면서 면도기에 힘입어 내 단발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고,
어릴 적 그렇게 말썽이 되었던 제비꼬리가 나이 들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여
올림머리를 했을 때 그 부분이 예쁘다는 소리도 곧잘 듣게 되었으니. . .
'세옹지마'란 말을 이런 때도 쓰면 될까?
2003 . 2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