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보리밥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42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가면 바람 따라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그 물결을 만드는 장본인이 보리란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에 느끼게 되었어.

옛날에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땀난 목에 휘감기는 보리 까시래기가 떠올려졌거든.

 

 오월이 지나고 유월이 오면

들판에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보리타작을 하게 되는데

 도리께 질 하는 아버지나 일꾼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하고

철부지 우리들은 멋도 모르고

그 도리께질 장단에 맞추어 마당을 이리 뛰고 저리 뛰니

덩달아 우리도 땀범벅이 되니

그 보리 까시래기가 목에 감기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까시래기를 떼어낸다고 손으로 이리 저리 털어내 보지만

땀난 살갗에 더 감기기만 할 뿐,

그것은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길러 등목을 해야만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보리타작을 하여 거둔 햇보리를

마을 어귀에 있던 연자방아에 가서

보리쌀로 만들어 밥을 지어 먹으면

지난 해 가을부터 먹어오던 좁쌀 밥에 비해 그 맛이 한결 부드러웠다.


 보리밥이 다되어 우리 집의 밥상에 밥이 차려지는 과정을 보면

가족사이의 그 위치를 알게 된다.
 보리밥을 한 가마솥의 뚜껑을 열면

 솥 가장자리로 둥그렇게 보리밥이 자리하고 있고,

그 가운데 섬처럼 쌀밥이 봉긋하게 솟아있고,

보리밥 사이로 점점이 주먹만한 감자가 익어있었다.


 솥에서 제일먼저 아버지의 밥을 푸는데

아버지의 밥은 쌀이 70% 쯤 되게 섞어서 놋 식기에 봉긋하게 담고,

다음은 집안의 일을 책임지는 일꾼의 밥을 푸는데

그의 밥은 쌀과 보리가 반쯤 섞인 밥(그 것을 엄마는 상반지기라 했다)을

같은 놋 식기에 밥알이 흘러내릴 정도로 담고

그 위에 밥솥에서 제일 큰 감자를 꼭 하나씩 올려주었다.

 

아마도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배가 고파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들의 배려가 담긴 것 같다.
 그 다음이 아들들의 밥을 푸는데

역시 일꾼의 혼용율과 비슷하게 섞어 각자의 식기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여자들의 밥을 푸는데

그 밥은 쌀이 20% 정도가 섞인 보리밥에다

감자를 으깨어서 만든 밥이었고 

개인별로 그릇에 담는 것도 아니고

양푼이에다 공동으로 담아 둘레 반에 놓고 빙 둘러앉아 먹었다.


 물론 아버지와 오빠들은 겸상이었고 일꾼은 따로 외상을 차렸었다.
 그 시절 농사 일 하기도 바쁜 때에

그렇게 상을 몇 개씩이나 힘들게 차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처럼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고

유교사상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볼 수 있었던 풍경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여자들은 그렇게 어렸을 적 부터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자라와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요즈음도

 뭔가 아들은 딸과는 달라야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게 된다. 

 

2003 . 6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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