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모깃불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43



 우리 어릴 적에는 이렇게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답답한 방안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마당에서 먹었었지.


 그 시절 저녁메뉴는 주로 시원한 건진국시였는데

어둑어둑하게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언니는 암반에 홍두께로 밀어 만든 칼국수를

부추나 애호박을 넣고 삶아서 금방 퍼 올린 시원한 펌프 물로 씻어

대소쿠리에 건져 놓았다가  어른들이 들에서 돌아와 씻고 나면

준비해놓은 멸치다시 국물에 말아 김 고명을 얹어 내놓았다.


 언니가 그렇게 저녁을 차려내는 동안 내가 할일은 모깃불을 피우는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언니나 오빠들이 준비하던 것을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처음으로 그 일을 맡았을 때

방법을 몰라 참 애를 많이 먹었는데

자꾸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나중에는 모깃불 피우는 일에서는 선수가 되었다.


 모깃불이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활활 타오르지도 않고

연기를 많이 내뿜으면서 오랫동안 타게 하는 방법은 이랬다.


먼저 불쏘시게로 잘 마른 갈비나 쓰고 난 공책을 찢어서

제일 밑에 놓고 그위에 반쯤 마른 풀을 올려놓고

그 위에 금방 베어온 풀이나 칡넝쿨 같은 것을 얹어 모깃불 더미를 만들어 놓고

밑의 불쏘시게에 불을 붙이면

불은 서서히 그리고 오랫동안 연기를 뿜어내면서 타올랐다.


 밤이 이슥하도록 모깃불은 타오르고 우리 형제들은 멍석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끝말잇기나 스무고개 또는 나라 이름 대기나

수도 이름 대기를 하면서 찐 옥수수 먹고 놀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고

밤이슬에 옷이 축축이 젖을 때쯤이면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방으로 옮겨 눕혀 재워주셨다.


  즐거웠던 여름밤의 추억도 읍네로 유학을 가면서 자주 만들 기회가 줄어들어

작은 자취방에서 더워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잠을 자야하는 신세가 되었고 ,

 우리 산골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나선

아예 모깃불을 피우는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고 

선풍기를 켜고 방안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여름이 오고 방학이 되면 그

 옛날 모깃불 피워놓고 별을 세며 놀던 그 때가 그립다. 


        2003 . 7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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