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풋 구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44

 



풋굿(첫풀을 매고 난 뒤에 그해 벼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굿)에서 유래되었으나

 조금은 변형되어 순수한 우리말

호미씻이(농가에서 음력 칠월경 농사를 잠시쉬고 노는 일)의

뜻을 가진 낱말과 같은그 행사를

우리 지방에서는 풋구라고 불렀다.

 

 내 어릴 적 이맘때쯤

음력 칠월 백중쯤이면

봄부터 열심히 가꾼 곡식들의 김매기를 마치고

한가한 날을 받아 마을 잔치인 풋구를 먹었다.
풋굿날이 되면 마을 사람(남자)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서 마을회관 앞에 모여서 먼저 몇 사람씩 짝을 지어

장마로 인해 유실되거나 풀이 무성하게 자란 농로를 정비하고

새참시간쯤해서 동수나무인 느티나무 밑으로 모이면

길을 닦는 동안 여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하루 종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농사일로 피로해진 심신을 달래주었다.


그날 음식을 준비하는 집들은 동네에서 살기가 괜찮아서

일꾼들을 두고 있는 집들로서

준비하는 음식은 주로 막걸리 한 동이와 전이었다.


 일꾼이 있던 우리 집에서도 음식을 준비했는데

며칠 전 부터 준비해서 발효시킨 막걸리 한 동이와

감자전, 호박전, 고추전, 부추전과

일꾼이 그동안 힘들게 일하느라 영양이 부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특별히 준비한 차노치(찹쌀가루 전)를 개다리 소반에

가지런하고 수북하게 담아 내놓았다.


 제삿날이라야 먹어보던 부침개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라서

우리들은 덩달아 흥이 났고

저녁무렵 거나해진 마을 어른들이

농악놀이로 흥을 돋우면 온 마을은 축제분위기로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노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그런 흥겨웠던 풋구도 마을의 젊은이들이 도회로 나가면서 시들해졌고

 지금의 농촌에선 풋구는 더 이상 나물 전을 부치지 않고

시내에서 사온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그 명맥만 유지해 가고 있다.

 

2003 . 8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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