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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과 선비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3. 11. 14:30

  선비와 양반을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엄밀하게 따진다면 상반된 뜻이 포함 되어있다. 선비와 양반의 같은점과 다른점은 무엇인가?

 

  같은점은 科擧를 볼 수 있는 집안,즉 서얼이나  再嫁한 모친,

노비등의 천민계층의 출신이 아니면서 어릴때부터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다는것 까지는 공통점이다.

 

 다른점은 양반은 벼슬길에 올라 성리학의 이념인 忠을 집권자인 임금에게 다 바치고

때에 따라 충성을 바칠만한 가치가 없는 임금을 위해 죽는것 보다는 삶을 보존하고 올바름을 도모하는 것이 유익한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냉혹한 현실의 문제를 실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념을 달리하는 정파와 치열한 당쟁도 벌리며 피비린내 나는 살륙을 마다하지 않을때도 있다.

 

 그렇지만 선비는 일단 벼슬길에 오르면 임금을 위한 충성이 아니고 하늘에 대한 충성이고 만백성에 대한 충성이된다.

性理學이란 인간의 본성속에 간직한 善한 실체가 존재하는 原因이 理에 있음으로 하늘에는 天理가 있고 인간에게는 道理가 있으니

道가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으며 義가 아니면 백번을 죽어도 변하지 않는것이 天理요 義理라고 굳게 믿고 행동에 옮긴다.

그러므로 義理란 不變的 眞理로서 理解와 得失은 물론 生死까지 초월하는 기본강상이 되는것이다.

조선조 의리정신에서는 의리강상을 숭상하고 현실적 이익을  탐하는것을 천시하였다.

 

 영남의 대표적인 선비를 뽑는다면 忠齋公 權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성종 9년(1478)에 테어나서 명종3년(1548)에 졸하신 분으로 안동 서후면에서 출생하여 

봉화 닭실(酉谷)파평 윤씨 집안으로 출입하여 닭실 권씨 입향조가 되는 분이다.

29세에 급제하여 병조.예조판서,한성부윤,원상을 역임하였으며 1519년 趙光祖의 개혁정치에 영남사림파의 한사람으로 참가하여 파직 귀향하였고

 1547년 윤원형이 인종의 외삼촌 大尹 윤임일파를 역적으로 몰아 처형할때 죄없이 선비들을 죽인다고 결사 반대하였고

중종의 비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할때 이를 혹독하게 비판한 良才驛 벽서사건에(문정왕후는 과부요 명종은 호로자식으로 나라를 망친다고 크게 비판한 사건)  연루되어 함경도 삭주에 귀양가 1548년 현지에서 돌아가신 분으로 올곧은 선비중의 선비이신 분이다. 

 오늘날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이런 선비들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여 지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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