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쑥 털털이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4. 10. 14:54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더운 날씨인 요즈음입니다.

내 어릴 적 봄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엔 봄이 오는가 싶으면 바로 여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빨리 더워지는 날씨를 보며

그 길었던 봄날에

힘든 일과 영양 부족으로 구혈이 돋아

혓바닦이 갈라져 매운 음식을 먹지못하던

어매가 즐겨 해먹던 쑥 털털이가 생각납니다.

어쩌면 털털이란 이름은 밀가루를 아껴 먹기 위해

쑥에 묻은 밀가루를 딱 필요한 만큼만 묻히고 털어낸다고 해서

붙혀진 것이 아닐까?

 

 

농촌에서 비교적 한가한 겨우내  영양과 체력을  비축하여

봄을 맞이하지만

가을 걷이한 밭에 남아있는 깨뿌리, 서숙뿌리, 고추대궁 뽑아내고

사과나무 전지 한 가지 줍고,

아버지를 도와 논둑 다듬는 가래질을 하고 나면

그 체력은 바닦이 나고만다.

 

가래질을 한 논에 볍씨를 뿌릴 때 쯤이면 어매는

항상 혔바닥에 구혈이 돋아

짭고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입맛이 없어했다.

 

바쁜 일철에 일은 해야하고

음식은 먹지 못하니 하루하루를 힘들어하던 어매는

들일 갔다 오는 점심 때나 저녁 무렵에 짬을내어,

논둑이나 밭둑에 파릇파릇하게 고개을 내미는 애기쑥들을 뜯어와,

지난 여름 농사지어 빠아놓은 밀가루에 소금과 사카리를 섞어 바가지에 담아

깨끗이 씻어 대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쑥에 더벅더벅 묻혀

가마솥에 밥이 다 되어 갈 때쯤 얹어 밥 풀 때 꺼내어 밥 대신 먹고

나른한 봄에 기운을 차리곤 했다.

 

어린 마음에

' 왜 저렇게 힘들어 하시며 일을 할까?

일꾼도 있고 아부지도 계신데 

 깔끔하게 차리고 집안 청소나 깨끗이 하고

우리 밥이나 맛있게 해주면 좋을 껄.'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내 어매 나이 되어 자식 키워보니 그 마음 알 것 같으나

어매는 벌써 저세상으로 가고 계시지 않는다

 

 

 지난 가을에 말려놓은 늙은 호박고지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울타리콩을 섞어 만들어 본 쑥 털털이

나도 이제 그 때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이런 것이 맛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 때 어매가 그렇게 입 말라 할 때

이런 꽃 따다 차 한 잔 끓여 드렸으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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