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기지떡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7. 4. 19:40

작년 서애 선생님 제사에 갔을 때,

대추와 검은 깨 고명을 얹은 낱개의 하얀 기지떡을 쪄서 서로 달라붙지 않게 감나무 잎을 따서 하나씩 꺼내 담아놓은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방법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방법이라고 하니 전통 명문가는 이런 사소한 것으로부터 유지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서애종가의 완전 수작업으로 만든 기지떡

 
증편의 사투리인 기지떡은 우리 경북 북부지방에서 여름철에 즐겨 해먹던 떡이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삼복더위를 이겨낼 떡은 오래두어도 잘 부패하지 않는 이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기지떡이 최고의 떡이였다.

특히 우리가 살던 영주지방은 이 떡이 없으면 여름철의 생일이나 제사 같은 행사를 치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기지떡의 본고장임을 과시라도 하듯 순흥기지떡이라는 상호를 내건 순흥기지떡 안동분점이 이 여름 손님들로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곳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떡 맛이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포장 방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곳의 포장은 마치 무슨 선물용 상자라도 되듯이 참한 직육면체에 손잡이가 있는 납작한 상자에 그 안에 들어있는 떡은 한입 베어 먹기 딱 알맞은 크기로 잘라져서

켜켜이 비닐종이를 깔고 담아 놓았으니 어느 자리에서라도 젓가락만 있으면 먹을 수 있다.

말 타면 종 앞세우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듯 떡을 집에서 해먹지 않게 되니 이제 더 편 하게 먹을 수 있게 된 방법을 제시하는 집이 그렇게 인기가 있다.

순흥기지떡 안동분점

 

여름제사가 유난히 많았던 우리 집은 제사 때 마다 기지떡을 만들었다.

제사 이틀 전 아침 일찍 쌀을 담궈 불려서 오후가 되면 디딜방아를 찧어 가루를 만들어 하루전날에

이이스트와 사카리를 넣어 물로 반죽하여 발효 시켜놓았다가 제삿날 아침 일찍부터 가마솥에 나무 채반을 깔고

차종 잎과 검은 깨,대추 채등의 고명을 얹어 쪄내기 시작하면 한나절이 지나야 다 쪄 내었다.

 

그렇게 분주한 제삿날은 어렸을 적 우리 형제들에게는 잔칫날이나 다름없는 즐거운 날이었고,

 기지떡은 더없이 맛있는 우리들의 간식이었다.

 

그런 기주떡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에 내겐 애물단지가 된 적이 몇 번 있었다.

행여 주말에 제삿날이 되면 먹거리가 귀한 그 시절

나는 제사떡을 자취하던 주인집이나 읍내에 사는 친척집에 배달하는 일을 맡아야했는데, 그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시내로 나가보니 읍내에서는 음식을 가져갈 때는 도시락이나 깔끔한 종이에 싸가지고 가는데,

우리 집에서는 떡을 신문지에 싸서 배달을 시켰다.

 

그렇게 신문에 싼 떡을 가지고 덜덜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친척집에 도착하면 떡은 그야말로 떡이 되어있고,

아래위에 있는 떡 겉에는 신문이 떡 달라붙어 억지로 떼어보아도 검은 글씨는 그대로 붙어있으니 가지고 간 나는 부끄럽기가 그지없었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친척 아지매는 가지고 오느라고 애썼다고 인사까지 하면서 붙어있는 글씨를 물로 살살 씻어내고 아이들에게 나눠주고는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비위생적인 음식물 관리였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의 추억이다.
만약 어머니 살아생전에 그 때 참 부끄러웠다는 말을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그렇게 먹고 살아도 90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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