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논 매는 날에는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6. 12. 13:02



어제는 바람도 살랑거리고  구름도 두둥실 떠다니니
집에 그냥 있을 수 없어 할 일 없이 차를 몰고 이동네 저동네 기웃거리다
논에서 일하시는 어른이 눈에 들어오고
어린시절 이맘때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논 매기가 생각났다

 

 



 이렇게 들판의 감자와 강낭콩이 푸른빛을 더하고
밭두렁에 심어놓은 물외(오이)나 고추에 지줏대를 세워주는 철이 오면
모내기한  나락(벼)은 제법 키가 자라고 
나락만큼은 아니지만 잡풀도 많이 자란다.
잡풀이 무성하면 나락이 잘 자라지 못하고 
제초제나 기계가 없던 시절, 손으로 그 풀들을 뽑아주니
그  일이 논 매기이다.

 

논 매기 철이 오면 
이웃들과 품앗이로 돌아가며 논 메기를 하는데
논 매는 날이 정해지면 
어매와 아부지는 지난해 아껴 갈무리해 두었던 콩이나 쌀등의 곡식을  이고 지고 장을 가서 
간잽이 고등어 두어 손과 노가리 한 떼와 소고기를 사오셨다.

 

논 매기 일꾼들이 많게는 열댓 명 적게는 일여덟이 되니 
그날은 새참과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안식구들도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했다.

언니와 어매는 밭둑에 제법자란 머구(머위)를 

전날 베어 삶아 들기름에 볶은 머구나물과  
논 멜때 먹을려고 아껴두었던 이젠 너무 자라 약간은 질긴 삶은 미나리나물
초봄에 심어 키운 배추의 줄기를 끓는 물에 데친 배추나물
 봄에 산에서 꺽어다 말린 고사리나물에
지난 장에서 사온 노가리 무침과 갖은 양념하여 찐 고등어를 더하고
일년에 몇 번 안하는 쌀밥과 소고기 국을 더하면 
임금님 수라상이 그보다 더 진수성찬이었을까?

 

그렇게 갖가지 반찬을 찬합에 담고 

국 그릇과 밥 그릇을 챙기고 먹을 물까지 챙겨야하니
어매와 언니가 대광주리 가득 담아 이고 
한손에는 그릇을 싼 보자기나 물주전자를 들어도 손이 모자라고 

집에 남은 반찬이 별로 없는 것을 아는 나는
애써 물 주전자는 내가 들고 가겠다며 받아들고 따라가보지만
작은 산을 넘어야 있던 우리 논은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멀던지

 

그렇게 새참과 점심을 배달하고 나면 해가 늬엿늬엿 저물고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엉머구리 떼가 합창을 할 즈음에 

일꾼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일꾼들은 그냥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일꾼은 수고했다는 보답으로 아부지가 애지중지 하던 소를 타고
같이 일했던 일꾼들은 풍물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산을 넘어오고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던 우리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일꾼들은 

한바탕 농악놀이로 흥겹게 놀고 난후 저녁과 술상을 받았다.

 

그 때 어둑한 남포불 밝힌 마당에서 

유난히 지게작대기 춤을 잘 추던 영구자재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너무 어려 그 흥겨운 마당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던 우리도 벌써 이순을 바라본다 



이제는 이렇게 논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기계로 심은 모내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아서 다시 심을 때나 
농약을 뿌릴 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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