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꽃물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8. 4. 22:55

시어머니와 함께 봉숭아 꽃물을 들였습니다.
 옛날처럼 봉숭아 꽃잎을 주워다 들인 것이 아니고

봉숭아 꽃잎 말린 분말을 화학약품과 혼합하여 제품화시킨 그런 것을 사서 들였습니다.


 옛날처럼 번거롭지 않게 물에 탄 분말을 손톱에 발라 한시간 정도만 지나면 빨갛게 물드는 것이 신기하고 편리했습니다만,

 힘들게 물들였던 옛날이 그리워 글을 올립니다.

 

 손톱을 치장하는 메니큐어가 대중화 되기 이전에 농촌에서 자란 우리들의 손톱을 조금은 사치스럽게 치장해보는 방법이

여름철의 봉숭아 꽃물 들이기와 가을이나 봄철의 돌꽃 물 들이기였다.


 그 중 석화라고 하는 돌꽃에 물을 부어 작은 돌로 문질러서 거기서 나온 액체를 가지고 물을 들이는 것은

산으로 들로 찾아 다니는 번거러움과 채취의 어려움 때문에 잘 들이지 않고, 봉숭아 꽃물을 자주 들였었다.


 여름철 울타리 밑에 봉숭아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가 지고난 뒤

그 떨어진 꽃잎을 주워 물을 들이는데 어린 우리들은 그 작업을 잘 할 수 없어서 그 일은 나이든 언니의 몫이었다.


 언니는 봉숭아 꽃잎이 떨어져서 수분이 약간은 줄어든 것을 주워다가

미리 준비해둔 소금과 백반을 넣고 절구에 찧어 우리들을 감나무 그늘에 펴놓은 멍석으로 데리고가

손톱위에 얌전하게 올려놓고 봉숭아 잎사귀로 감싼뒤 가는 실로 묶어 주었다.

 

 묶어놓은 것이 떨어질세라 우리는 양손을 배위에 반듯하게 올려놓고 누워있다보면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던 피곤한 몸은 어느새 잠이 들고

몸부림통에 물들여 놓은 봉숭아 꽃은 떨어지고 비뚤어져

손톱만 물들인 것이 아니라 손가락과 지난해 운동회때 사입은 런닝셔츠도 함께 물들이곤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봉숭아 물을 들일 때면 언니는 항상 말해주었다. 
 

"첫 눈이 올때까지 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고
 어린 우린 첫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첫눈이 올때까지

물이 빠지지 않기를 기도 했었다. 

 

 이제 그렇게 물들이던 봉숭아꽃물도 상품화 되었고,

그 물들여 주던 언니도 반백이 되었다.

 그렇게 봉숭아 물로 나마 멋을 내어보던 우리앞에

어쩌다가 나타나던 뾰족구두 신은

 손톱이 매발돕(메니큐어 바른 가늘고 뾰족한 손톱)같다고

아서서 키득거리던 그런 손톱을 가진 여자들도 주위에 부지기수니 세월의 무상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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