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정지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9. 15. 23:01

잊혀져가는 고향의 모습을 찾아 산골동네를 기웃거리길 좋아하는 내가

지난 월요일엔 안동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찾아들어간 오두막집

 향수를 불러오는 계절의 초입이라 그렇잖아도 고향생각이 많이 나는데

그 집에서 마치 옛날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 우리집 정지(부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곳을 만나

고향에 다녀온 듯 푸근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허름한 오두막이지만 가마솥이며 작은 남비들,
그릇을 씻어놓는 선반까지 반짝반짝 윤이나는 모습이

주인 할머니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더욱 아름다웠던 공간이었다.

 

 

우리집 정지는 이곳보다 규모가 조금 더 커서

두개의 가마솥 사이에 동솥이라는 작은 솥이 걸려있었고,

가마솥의 왼쪽에 큰 물두멍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자매들은 방과후에

물두멍에 물을 가득 길어다 놓아야 밥값을 했다는 소릴 듣고 . . .

 

 

 

 우리집 정지에도 저렇게 성냥( 우린 그걸 다황이라 불렀다)

물이 튀지 않는 높고 건조한 곳에 올려 놓았었다.

그렇게 불이 잘 켜질수 있게 준비하지만

비라도 오는 날이면 성냥불이 잘 붙지 않아 애를 먹곤했다.

돈표성냥, 아직도 저런 것이 있다는 게

나이 든 나도 신기한데

우리 아이들은 저런게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늙어갈 것이다

 

 

 

정지에서 쓰던 대바구니나 소반을 주로 얹어 놓던 실겅에

여름에는 아침에 한 보리밥이 쉬지 말라고

대소쿠리에 담아 삼배보자기를 덮어 올려놓고

어른들이 들에 가시고 없는 빈집에  

십리 길 걸어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는

그 소쿠리 내려 고추장 빨갛게 비빈 보리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우리집 정지도 꼭 이랬다.

불조심이나 산림보호 이런 글이 새겨진 아궁이 문이 고장나면

저렇게 쓰다 버린 드럼통 뚜껑으로 아궁이 문을 대신했다

 

 

 

이 집 주인은 정화수를 떠 놓고

조왕신(부엌을 지키는신)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우리 어메는 대문 밖 팥돌(팥을 갈던 넓직한 돌)위에

정화수 떠넣고 우릴 위해 기도 했었다.

 

 

 

아주 가난한 집은 아니었지만

쌀이나 잡곡은  구남매 입히고 학교 시키자니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었다.

그건 팔아 돈을 장만해야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연 우리가 먹는 것은 지금은 주로 부식으로 먹는 것이 많았다.

특히 여름철의 저녁은

국수에 강낭(옥수수)을 삶고

감자를 쪄서 먹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

많은 식구들이 먹을 만큼의 손국수를 삶을 때는 가마솥에  삶았다.  

그 때 국수 가락이 서로 엉키지 말라고 젓던  

나무로 만든 포크 같이 생긴 저것의 이름은 모르지만

아직 여기에 걸려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신기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주인과 같이 했으면 

손때 묻어 반질거리는 것이 마치 나무가 아니라

철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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