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조약 감기약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4. 1. 00:28

 며칠 째 감기기로 콜록거리고 있다.

나름 야무지다고 생각하는데

겨울도 다 간 철에 이렇게 감기가 걸리는 것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감기약과 함께

지난 가을 저며놓았던 유자차를 타 먹어 보지만 감기는 뚝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오랜 감기로 고생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감기약,
어릴 적 어매가 만들어 준 그 조약이 먹고 싶다.

조약 감기약 

 읍내에서 20리, 면 소제지서 10리나 떨어진 동네에서 살던 우리는
워낙 건강하게 자랐기 때문에 약을 먹어본 기억이라곤 여름에 먹던 금계랍이라고 하는 말라리아 약과 감기약이 전부였는데,

그중 감기약은 약국에서 지어다 먹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지어다 먹은 것도 아닌 우리 집에서만 조제해 먹던 조약이었다.


 겨울이 되면 눈밭이나 얼음 논을 마다않고 휘돌아치며 놀던 우리는

대체로 건강했지만 어쩌다 감기라도 걸리는 날이면 그날은 생일 못지않은 행복한 날이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이라도 조금 심해지면

"아아들이 고뿔이 걸렸제?" 하시며

아부지는 마을 뒷쪽에 있는 대밭에서 댓잎을 따오시고

어매는 가을에 따두었던 모과와

감주를 해먹을려고 준비해두었던 엿기름과 제사를 지내려고 갈무리해두었던  알밤과 파뿌리를 씻어

작은 무쇠솥에 넣고 물을 적당하게 부어 한참을 푹 고아서 

 밤이 이슥해지면 양재기에 그득히 담아 콜록거리며 누워있는 우리들에게로 들어오셨다.

 

그러면 감기에 걸린 사람은 그것을 먹게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기에 들어있는 피밤을 까먹는 맛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그 맛이었다.

 

그러나 감기에 걸리지않은 사람은 군침을 삼키며 먹고 싶은 마음을 자제시켜보지만,

그게 배고프던 시절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지.
그렇게 군침을 삼키고 있으면 환자가 된 사람은 아주큰 인심이라도 쓰듯이 알밤 한 두 개를 건네주는데,

그 맛은 감기 걸린 사람이 먹는 맛에 비기랴.


그렇게 밤을 먹고 난후에 솥에서 금방 떠온 그 국물을 한 대접 마시고

군불지핀 방에서 밤새 땀을 쭉 빼고나면 우리들의 감기는 대체로 나았다.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에 먹고 싶은 알밤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재료들의 약 성분 때문일까?
아니면 전기도 없고 가스도 없던 그 시절 밤중에도 자식 일이라면 귀찮아 하지 않으시던
부모님 정성 때문일까?
우리들의 감기는 신기하게도 잘 나았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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