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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병산서원은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9. 7. 16:56

지금,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병산서원을 가시면 백일홍 꽃밭에 앉아 세상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가실 수 있어요.

명승지를 찾아가는 길 중에 거의 유일하게 비포장인 도로를 따라 차로 한 5분 정도를 가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가에 병산의 기암절벽을 마주하고 선 병산서원을 만날수 있답니다.

 꽃이 절정인 시기가 지나 때늦은 감이 있지만 병산서원의 또다른 아름다움에 젖어보실겁니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서애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고려 때, 안동의 풍산현에 풍악서당이 있어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고려말, 공민왕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무렵,

그곳 풍악서당에서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호패와 땅)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 하였습니다.

 

 이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 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것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서애 류성룡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였기에

 유림들은 그 일을 선생께 문의하였다고 합니다.

 

 서애선생께선 그 문의를 듣고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572)

 

 임진왜란으로 불에탄 서당을 다시 중건하였고(1607),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서원이 되었습니다.(1610)

 그후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던곳이며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의 제자들과 유림이 뜻을 같이 하여,

서원 안에 사당(존덕사)을 세우고 위패를 모셔서 선생의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며 향사(제사)를 올리던 서원입니다.

 이 제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일홍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을 따라 이제 서원으로 들어가볼까요.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인 복례문.

이제 제사지내고 공부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니 예절없이 굴지 말고 다시 예의를 갖추랍니다.

 

복례문을 지나며 고개를 드니 만대루가 마주보이고 

 

 

 

 

 

복례문 오른쪽에는 옛날 유생들이나 제관들이

 쓰던 고품격화장실 정낭이 있고

 

왼쪽에는  아담한 연못이 있네요

 

깍거나 다듬지 않은 돌과 나무를 써서 울퉁불퉁,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만대루 아래를 지나

 

만대루를 올라보니 발 아래 지천으로 핀 백일홍이 신선의 세상에 든 듯하게하고

만대루에서 병산을 바라보면 일곱 폭 병풍이 눈앞에 펼쳐진 듯 하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꽃에 취해 잃었던 혼을 다시 찾아 고개를 돌리니 병산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과 동,서재가 보이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에 오르니  입교당(가르침을 바로 세운다)이란 현판을 마주하게 되네요

 

 입교당에는 두칸의 방이있으니 오른편에는 원장님 방인 명성재, 왼편엔 지금의 교무실의 기능을 하던 경의재가 있다 

입교당에서 본 동재. 상급생들이 거쳐하며 공부하던 곳이랍니다 

 

동재의 방에는 근직재란 현판이

 

동재 뒷쪽에 난 창문은 아주 낮게 달아

 아침 햇빛이 방바닥에 반사되어  방안을 환하게 밝히면

유생들이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게 했다네요 

 

입교당에서 본 서재

 

 

 

서재에 있는 책을 보관하던 장서실. 

서재의 뒷쪽에 있는 창은 높게 달아 넘어가는 해를 오랫동안 볼 수있게 했답니다

 

 

 

입교당 뒤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병산 

입교당 뒤 왼쪽에 있는 목판을 넣어두던 장판각 

서애 유성룡선생과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입구에 주역의 팔괘가 그려져있는 것이 특이하지요?

 

고직사에서 만든 제사음식을 보관하고 진설하던 곳인 전사청

 

 

수령 300년이 넘은 백일홍은 그 이름에 걸맞게 100일 동안 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꽃구경에 빼았긴 정신을 차려서 동재 뒷쪽에 있는 작은 문을 나가면

서원 관리와 유생들의 식사와 제수를 장만하는 일을 담당하던 관리인이 살던 집 고직사가 있고 

고직사 앞에는 관리인들이 쓰던 화장실인 통시가 있다 

 

 

병산에서 바라본 병산서원 전경.

 

병산서원의 자연과 하나된 아름다운 풍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철이 더 낮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백일홍이 만발한 한여름의 화사한 운치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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