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선물

렌즈로 보는 세상 2009. 9. 17. 22:34

블로그를 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관계된 이야기를 할려고 하면 왠지 부끄러워 올리기를 망설였지만

오늘은 올리지 않으면 내가 너무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될까봐 쑥스러움 무릎쓰고 올려본다.

 

내가 결혼해서 딴 살림을 시작한 지는 삼십년이 가까워온다.

살림을 시작하고 몇년은 친정이나 시댁이 모두 농사를 지어서 철마다 나는 채소며 과일은 사먹지 않고 얻어다 먹었다.

그렇게 얻어 먹다가 어른들이 연세가 들어 농사를 짓지 못했을 땐

셋째 언니가 과수원을 하여서 가을에 사과따기를 거들어주고

사과중에 제일 맛있는 사과, 새 따먹은 사과를 얻어다 먹었다.

새 따먹은 사과가 왜 맛있냐고요?

새들은 나무 꼭대기의 해를 많이 받아 빨갛게 잘익은 것들만 쪼아먹거든요. 

 

그렇게 한 20년은 맛있는 야채나 과일을 잘 얻어 먹고 지냈는데 언니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근래 몇년은 이천에서 배농사를 짓는 셋째 형부가 보네주는 배는 자주 얻어먹지만 다른 농산물은 얻어먹지 못한다.

얻어먹을 때는 고마운 것도 몰랐는데

주변에서 시댁이나 친정에서 무공해 야채나 과일을 얻어먹는다는 소릴 들으면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친정 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도 아니고, 언니도 아닌

집안 아지매로 부터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난순이 아지매

내 11촌 고모뻘이 되니 요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이나 다름 없는 사이이겠지만

우린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아침에 병원에 오면서 텃밭에 주렁주렁 익어가는 무농약 고추를 급하게 뚝뚝 따서 넣었다네요

우리는 사촌이 없고 같은 동네에 친척이라고는 대여섯집 밖에 없었다.

몇 집 안되는 친척 중에서도 난순이 아지매네와 우리는 특히 가까워서

우리 집에 일만 있으면 아지매가 와서 거들어주고

특히 우리 셋째 언니와 나이가 비슷해 항상 같이 어울리다보니

내 막내동생들을 들일가는 엄마 대신 언니와 같이 키우다시피했다.

쌀이 조금 노리끼리 하지요? 몸에 좋은 오분도(일반미 보다 껍질을 덜 벗긴 것) 쌀이 라네요

농토가 많지 않고 외동딸이던 아지매는 들일도 별로 하지 않는데다 성격이 깔끔해서

언제나 집을 깨끗하게 쓸고 닦아 마당까지 반질반질했다. 

가지도 기름이 자르르 합니다. 요렇게 담아 차에 실고 왔답니다

또 꽃을 좋아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아지매네 집은

입구부터 봉숭아, 백일홍, 금잔화, 맨드라미, 채송화등 없는 꽃이 없었다.

 특히 채송화를 흙담 위 이엉을 고정시킨  흙 위에 심어놓은 것은 지금도 그 아름답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배추에 벌래 먹은 구멍이 숭숭하네요

초등학교 다닐적에는 공부도 잘하고 리더쉽도 있어 부반장을 도맡아 놓고 했던 아지매가

계속 공부를 하였으면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텐데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안일만 하다가 시집을 농촌으로 갔을 때 우리 식구들은 조금은 마음 아파했다. 

 

힘들게 일도 하지 않고 외동딸로 자랐는데

대농을 하는 시댁에 어른들까지 모셔야하는 맏며리라서 우리들 마음은 더욱 그랬다.

이게 뭐냐구요?  토종 다래랍니다. 술을 담아 먹으면 신경통에 좋다네요

그렇게 우리가 걱정했던 아지매는 

어른들 잘모시고 시동생들도 잘 보살피니 요즈음 보기드문 형제애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가정을 이루었고

살림도 열심히 꾸려나가 어른들 살아계실 때보다 더 큰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아무리 우애가 있고 큰 농장의 주인이 되었어도 아지매 사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어쩌다 보는 우리도 마음 편치 않을 텐데

아지매는 그 옛날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농한기가 되면 이것저것 배우는게 즐거워 신이나고

다리가 아파 불편한데도 힘든 일을 할 때도 항상 즐겁게 일하며 부인회등 사회활동도 열심이다. 

 

이렇게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아지매가 며느리도 보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품종도 다양하고 모양도 가지가지 색깔도 가지가지지만 사과 중 제일 맛있는 새 따먹은 것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선물을 내가 직접 받지 못해서 저녁에 전화를 하니

아지매는 도리어  이서방(내남편)이 점심 사느라 돈 많이 들었다고 걱정이다.

 

남에게 베푸는 사람은

자기것 주는 것은 항상 작은 것 같고  

받는 것은 항상 큰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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