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아지매의 서울 구경

삼성산 염불암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4. 29. 18:18

안양의 예술공원을 갔다가

공원이 끝나 갈 즈음 왼쪽에

염불암이란 안내판을 보고 차를 타고 올라간 염불암

삼성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는 절은

높은 곳에 위치한 만큼 멀리 발아래의 산들과 안양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과 

기와를 얹은 돌담에 담쟁이가 유난히 눈부시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기암절벽에 지어진 절집들은 마치 돌담에 붙어있는 담쟁이들과 닮아있었다.

늦게 가서 밖의 모습을 촬영하다보니 어느덧 해는 뉘엿거리고

 각 전각의 안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쉽다.

 

삼성산은

원효, 의상,윤필 등 신라의 세 성인이 이 산에 들어와 원효대사는 삼막사를,

 의상대사는 연주암을, 윤필거사는 염불암을 각각 짓고 수도 하였다는 설과

삼막사에 지공, 나옹, 무학이 머물렀던 까닭에 삼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두 가지 설이있다.

 

염불암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유래도 있으며

이때 이름은 안흥사로 곧 염불암의 시초로 전해진다.

조선 태종 7년에 한양의 백호에 해당하는 관악산의 산천기맥을 누르기 위해 왕명으로 사찰을 대중창했고,

이후 계속 중수하여 조선 후기 철종 때 이르러 도인 스님의 칠성각 건립과

1992년 청봉스님에 의해 요사체와 대웅전이 완공되어 그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높이 8미터의 미륵불은 1947년 성공 , 기석, 화상이 주지로 부임하여

낡고 퇴락한 전각을 늘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불사를 준비하던 중,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마애불상을 새겨 널리 중생을 구제하라는 현몽을 받들어

1964년부터 5년의 불사 끝에 완공한 것으로 전해온다.

사찰 선방 주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중 마애부도 2점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부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대웅전 앞에 있는 수령 600년의 보리수(도지정 보호수 5-2)는 염불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각 전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전

 주차장 부근은 기와를 얹은 오래된 돌담의 담쟁이가 화사하게 웃으며 나그네를 반긴다

 

우린 차를 타고 절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이 계단에서부터  절집 구경을 하게 되었다.

 

 요사체 앞의 장독대

많은 사람들이 염불암을  다녀감을 알 수 있다.

 

 

대웅전과 600년된 보리수나무

 

 

 대웅전 오른쪽 야외불단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지장보살이고 왼쪽이 산신이다.

 야외불단과 대웅전 사이로 보이는 독성각과 칠성각과 산신각

대웅전과 염불전 사이로 보이는 칠성각과 미륵전

 

왼쪽이 대웅전, 가운데가 나한전,   오른쪽이 염불전, 염불전 너머에 범종각

 

 염불전

나한전

 

 

 

 독성각(나반존자를 모신 전각)

(나반존자 :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에 이르렀으므로 ‘독성(獨聖)’이라 이른다)

 산신각(산신을 모신 전각)

주지스님의 현몽으로 5년간의 불사 끝에 완공된 8미터의 미륵불

(미륵불 : 불교에서 다음 세상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 부처이다. )

미륵불 옆의 영산전(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영산회의 불보살을 노래한다는 뜻으로 지은 불전)

 

칠성각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祈雨)·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칠성신에 대한 제사는 조정과 민간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도 대부분의 사찰에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이다.

 칠성각에는 칠여래(七如來)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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