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소 먹이기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9. 1. 16:58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나는 밤마다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내일은 비가 오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그 때는 어른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소에게 먹일 꼴을 벨 시간이 없어서

놀고있는 우리들에게 소를 몰고 산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하여 소의 배를 채우게 했다.

 

 
우리집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남여를 불문하고

그 일을 해야했으니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너무 햇살이 강한 한낮에는 소가 더위를 먹는다고 집에서 놀다가
오후 서너시가 되면 소를 몰고 옆구리엔 방학숙제 할 것을 끼고 산으로 가서,

 일단 산등성이에 올라 산 전체를 둘러보고 나무가 많지 않고 풀이 우거지고 상석이 놓여있는

 산소가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가 그곳에서 풀을 뜯어 먹이는데

 


그래도 명색이 여자라고 다리에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내려고

소타레기를 나무에 묶어놓고 있다가 온날은

용케도 어른들이 알아내시고 게으름을 피웠다고 야단치니

 다리가 풀쐐기에 쏴이거나 억새잎사귀에 베이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소를 풀어놓고 먹여야 하니

그 소를 따라 다녀야했던 내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으니

비오는 날이 그렇게 기다려질수밖에. 


 

 그래도 그런 날의 낭만이라면
상석 위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난 뒤
돌아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는데,
비 온 뒤의 그 맑은 하늘에 떠있던 구름을

나뭇가지들 나머로 바라보는 것은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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