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벌초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9. 5. 12:48

 



 이제 추석도 얼마남지 않아서 우리집도 사람을 사서 벌초를 마쳤다.

돈이 고생이지 사람을 사서 하니 편하기는 무척 편하다.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가서 성묘만 하고 오면 되니 말이다.

 

시집 와서 한 20여년을 나는 매년 신랑하고 같이 벌초를 다녔다.

 남편이 2대 독자라 시조부님 산소에 풀을 내리는 것은 우리집에서 해야하는데

아버님은 늘 바쁘신 분이라

능숙하지도 않은 낫질을 하는 남편을 도와 내가 늘 따라가서 했다.

그러다가 시조모님이 돌아가시고 연이어 아버님까지 돌아가시니

이제 산소에 풀을 내리는 건 우리 내외가 할 수있는 일이 아니어서

사람을 사서 풀을 내린지 벌써 오 년이 넘었다.

 

많이 편해진 요즈음

그렇게 남편과 힘들게 벌초 다니던 시절에 써 놓았던 글이 있어서 올려본다.

 

 

풀 내려 깔끔한 영상대감 오리 이원선생 형님 내외분 묘소 전경

 

벌초


며칠 전에  신랑하고 벌초를 다녀왔는데,

자주 해보지도 않은데다 솜씨까지 없는 그이가

벌초한 산소의 모습이 마치 소가 풀을 뜯어 먹은 풀밭의 모습이라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내가 못하는 일

중얼거려 봤자 잔소리 밖에 되지 않을 테니 참기는 했는데,

봉분은 아무리 봐도 우리 어릴 적에 머리에 헌디(종기) 나서

그곳은 머리를 짧게 깍아 주었던 그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한  소리했다.


 그렇게 깔끔하지 못한 산소를 보면서

옛날 아버지가 방금 이발소에서 이발을 한 듯한 모습으로 다듬어 놓았던

우리 조상들의 산소를 생각했다.

 

 

 

 

 

찌는 듯한 더위도 한풀 꺽이고,

서늘한 가을바람에 곡식들이 일렁이기 시작하는 음력 팔월이 오면,

아버지는 바쁜 일손을 쪼개어 벌초를 하기 시작했다.

  독자이신 아버지는 벌초를 해야 할 산소가 10기 정도로 유난히 많았지만, 

도시에 나가있는 당숙부님 몫의 산소까지도 벌초를 하셨다.

낮에 농사일로 바쁘신 아버지의 벌초는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 하시는 식전 일이었다.

 

 새벽 다섯 시쯤에 일어나셔서

전 날 저녁에 먹다 남은 국수나 감자가 있으면 드시고

서너 자루의 낫을 숫돌에 갈아 시퍼렇게 날을 세운 뒤

지게에 꽂고 산소에 풀 내리고 온다시며 집을 나서셨다.

 

그렇게 나가신 뒤 두어 시간이 지나서

지게에 풀을 가득 담아 지고

앞산을 내려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마당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베잠방이는 언제나 이슬에 젖어 있었지만

얼굴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여 지고 온 풀은 소여물이 되기도 하고

이듬해 농사 지을 거름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8월의 10여 일간 정성들여 벌초를 한 산소는 10월이 되어

시사를 지내러 간 우리 남매들에게는

마음 놓고 딩굴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2005 . 9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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